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프로이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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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Friedrich Wilhelm IV, [[1795년]] [[8월 15일]] ~ [[1861년]] [[1월 2일]])는 제6대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국왕(재위: [[1840년]] ~ [[1861년]])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의 장남이자 후계자로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바이에른 왕국|바이에른]]의 공주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루도비카|엘리자베트 루도비카]]를 왕비로 맞이했고, [[1840년]] 프로이센 왕국의 군주에 올랐으며, [[1858년]] [[뇌졸중]] 발병 후유증을 사유로 아우 [[빌헬름 1세|빌헬름]]의 [[대리청정]] 체제를 조치하였으며,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루도비카|엘리자베트 루도비카]] 왕비 사이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사후 왕위는 [[대리청정]]을 지냈던 아우 [[빌헬름 1세|빌헬름]]이 물려받았다. 그는 [[마르틴 루터|루터]]가 [[95개 논제]]를 붙였다는 유명한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을 새롭게 교체하였다.
 
== [[1848년 독일 혁명|1848년 혁명]] ==
[[19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독일 통일과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그를 황제로 추대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그들을 '폭도'와 폭도에게 미혹된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국민 의회의 궁극적 목표는 군주제와의 싸움이며, 그들에게 황제를 임명할 권한이 없다고 말하며 추대를 거부했다. 결국 베를린에서 프로이센 군대는 시위대에게 발포했고, 13시간에 걸친 시가전 끝에 시위는 끝났다. 빌헬름 4세는 3월 19일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로서 [[1848년 독일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