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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세 ==
 
=== 한국동아시아 ===
 
==== 한국 ====
1392년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일으킨 이후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새 왕 이성계는 명나라에게 '조선'이라는 이름을 선택받아 왕조의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그는 [[명나라]]에 맞서고자 했던 [[고려]]와는 달리, 명과 사대 관계를 맺었으며, 몇몇 행정구역과 정부 체제를 개편하였다. 또한 그 때부터 [[조선왕조실록]]이 편찬되었다. 이성계의 손자 [[조선 세종|세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 [[한글]]이 창제되고 [[측우기]], [[앙부일구]]와 같은 발명도 이루어졌다. 칠정산, 농사직설과 같이 조선에 맞는 역법과 농법이 백성들에게 소개되었으며, 또한 북방의 [[여진]]과 남쪽의 [[왜구]]를 토벌하였고, 고려 시대 [[최무선]]의 화약을 바탕으로 [[화차]]와 같은 군사병기도 제작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은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지금 남북한을 합친 것과 같은 영토가 이 때 형성되었다.
 
[[파일:L1020964.JPG|섬네일|약 600년간 [[명나라]], [[순나라]], [[청나라]]의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자금성]].]]
 
====== 중국 ======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명나라]]는 [[정화 (명나라)|정화]]의 함대를 파견하여 이슬람과 인도,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존재와 강력함을 알리고,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떠올랐지만, 그 후 나라의 문을 걸어잠그는 쇄국 정책을 펼쳐서 점차 유럽에 뒤쳐지게 된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떼 조선에 원군을 파견하여 일본 세력이 중국 본토에 진출하는 것을 막아냈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입어 북방의 [[여진족]]이 [[만주족]]으로 개칭하고 [[청나라]]를 세우는 것을 막지 못했다. 때마침 [[이자성의 난]]이 발생하여 명나라는 멸망하고, [[이자성]]이 세운 [[순나라]]는 [[청나라]]의 침략으로 1년 만에 멸망한다.
 
17세기 세워진 [[청나라]]는 크게 영토를 확장한다. 몽골, 티베트, 위구르 등 유목 민족들을 모두 청나라의 영토로 정복함으로서 [[명나라]] 시기와 비교해 중국의 영토를 2배 가까이 늘려놓았다.<br />[[강희제]]는 [[강희자전]]을 편찬하여 한자를 집대성해 현대의 한자 연구에 큰 보탬이 되었다. 뒤를 이은 [[건륭제]]는 백과사전식 책인 [[사고전서]]를 편찬하여, 사회, 경제, 언어, 문화, 종교, 지리 등 모든 분야를 하나로 정리하여 학문과 지식이 매우 크게 발달하였다.
 
[[청나라]]의 도읍 [[베이징시|대도(베이징)]]의 유리창 거리에는 여러 서점들과 상점들이 즐비했는데, 이 서점들에는 [[청나라]], [[조선]], 일본의 [[에도 막부]] 등 전 세계에서 온 학자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펼쳤고, 이곳의 서적들이 학자들에 의해 [[조선]]에 유입되어 [[북학]]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유리창 거리는 동아시아 지식·문화 교류의 중심지가 되었다.
 
[[만주족]] 왕조인 청나라는 당연히 [[만주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점점 [[한어]]가 황실로까지 유입되고, 결국 청나라의 황실마저 [[만주어]] 대신 [[중국어]](한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언어적인 부분에서 볼 수 있듯, [[만주족]] 왕조 [[청나라]]의 지도층들은 점점 [[만주족]] 고유의 문화를 잃어갔다. 이 때 만주어가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여 현대에 [[만주어]]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청나라]]는 모든 중국 국민에게 [[만주족]]의 풍습인 [[변발]]을 강요하였고, 만주족의 전통 의상 [[치파오]]가 한족의 전통 의상 [[한푸]]를 밀쳐내고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옷'으로 자리잡고 있듯 [[청나라]] 시기의 [[만주족]] 역시 중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br />
 
=== 인도 ===
[[파일:Taj Mahal, Agra, India edit2.jpg|섬네일|[[무굴 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타지마할]].]]
중앙아시아 [[티무르 제국]] 왕족 출신인 바부르는 오늘날 인도 북부에 [[무굴 제국]]을 세운다. 무굴 제국은 점차 인도를 통일하고, 이슬람교를 인도 전역에 전파하였다. 공용어로 [[페르시아어]], [[힌디어]], [[아랍어]] 등을 섞어 놓은 언어인 [[우르두어]]를 사용하여 현재 [[파키스탄]]의 국어가 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무굴은 인도의 기존 종교인 [[힌두교]]와 무굴 제국의 종교인 [[이슬람교]] 사이의 융화를 추친하였다. 그래서 초기에는 두 종교 세력이 별 마찰 없이 잘 지냈으나, [[아우랑제브]] 황제 때부터 [[힌두교]]를 탄압하고 [[이슬람교]] 중심 정책을 펼치면서 점차 민심을 잃어 갔다. 때맞춘 [[대영 제국]]과 [[프랑스 왕국]] 등 유럽 국가들이 인도에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무굴 제국]]은 무너졌다.
 
무굴 제국은 언어, 문화, 종교 모든 면에서 이슬람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타지마할]]인데, 대표적인 이슬람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무굴 제국의 멸망 이후, 인도는 [[대영 제국]]의 식민지가 된다.
 
== 근대 ==
 
=== 동아시아 ===
 
==== 한국 ====
1870년대 초반 일본은 조선에 압력을 행사하면서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중국과 충돌하였고, 한국을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였다. 조선 정부는 일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러시아와 밀착하는 친러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한반도에서 약화된 자신들의 영향력을 만회하고자 1895년 [[명성황후]]를 암살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3">{{웹 인용 |url=http://www.kimsoft.com/2002/jp-rape.htm |제목=명성황후 살해 |확인날짜=2004년 10월 9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1009171355/http://www.kimsoft.com/2002/jp-rape.htm |보존날짜=2004년 10월 9일 |url-status=dead }}</ref> 1897년 조선은 [[대한제국]] (1897-1910)으로 국호를 새롭게 정하였고,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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