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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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차지하는 광대한 [[유라시아]]의 [[초원]]의 지역으로 뻗어갔으며, [[아랄 해]]의 북쪽 지역과 서쪽으로 [[흑해]] 북쪽 지역(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남서부 러시아)에 뻗어나가서 유목 지역(데쉬트 이 킵차크)을 발견했다. 그들은 나중에 [[몰다비아]]로 알려진 땅과 [[왈라키아]]와 [[트란실바니아]] 일부를 11세기쯤에 침입했고 그들은 비잔티움 제국과 헝가리 왕국으로부터 약탈을 계속했다.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에 걸쳐 킵차크 인들은 [[비잔티움 제국]], [[키예프 루스루시]], [[헝가리인|마자르족]] 그리고 [[페체네그인|페체네그 인]]과 함께 다양한 갈등과 복잡한 관계가 생겼다. 동맹은 그들 자신과 함께 다른 시간, 다른 편의 하나였다. 1089년에 그들은 헝가리의 [[라디슬라오 1세]]에게 패배하고 12세기에 다시 키예프키에프 루스의 공작인 블라디미르 모노마흐에게 패배했으며 결국 1237년에1241년에 몽골족에게 박살이 났다. 몽골제국의 와해 후에 지금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킵차크 칸국]]이라고 부르는 [[몽골 제국]]의 가장 서쪽의 한국(汗國) 구성의 일부분이 되었다.
 
[[쿠만인|쿠만]]족은 [[헝가리]]로 도망쳐서 그들의 전사들은 [[로마 가톨릭]](라틴계의) [[십자군]]과 비잔티움 제국의 용병이 되었다. 이집트의 [[맘루크]]의 첫 번째 왕조인 [[바흐리 왕조]]의 구성원은 킵차크 인이었다. 가장 두드러진 예 중에 하나로 [[바이바르스]]는 크림반도의 솔하트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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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차크 인은 현대의 카자흐 족과 [[키르기스]] 족 다소의 주민이 후손이다. 킵차크 인은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카자흐 부족의 이름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 부족의 이름이다.
 
또한 그 곳에서그곳에서 [[크림반도]]에 존재하는 킵차크라는 마을의 이름이 지어졌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