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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 정보
|이름 = 현목수비현목유비 박씨
|그림 =
|그림제목 =
|휘 =
|작위 = 빈, 추존비
|별칭 = 수빈유빈(綏嬪, 1787~사후) <br/> 가순궁(嘉順宮) <br/> 현목수빈현목유빈(顯穆綏嬪, 사후)<br/>
현목수비(顯穆綏妃, 사후 대한제국 추존)
|배우자 = [[조선 정조|정조]]
|능묘 = 휘경원(徽慶園)
|사인=풍담(風痰)}}
'''수빈유빈 박씨''' 또는 수비유비 '''박씨<ref>[http://blog.daum.net/aroma-may/10054797 유빈 박씨 진향문 한글본]</ref>'''(綏嬪 朴氏, [[1770년]] [[음력 5월 8일]] ~ [[1823년]] [[2월 5일]]([[1822년]] [[음력 12월 26일]]))는 [[조선]]의 제22대 왕 [[조선 정조|정조]]의 네 번째 후궁이자 마지막 간택[[후궁]]이고, 제23대 왕 [[조선 순조|순조]]의 생모이다. 삼간택을 거쳐 입궁하고 빈으로 책봉된 뒤에 가례를 행하였다. 원자(순조)를 낳은 후에도 왕비인 효의왕후를 신중히 섬기고 같은 반열을 더욱 온화하게 대하니, 궁중에서 모두 어질다고 칭송하였다. 정조 사후에 궁중 어른인 [[정순왕후 (영조)|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와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와 [[효의왕후|왕대비 효의왕후 김씨]]에게 하루 세 차례 문안 드렸고, 아랫사람을 인자하면서도 위엄 있게 이끌었고, 복식과 기용(器用, 그릇)은 진귀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평상시에 말이 적었다고 한다. 본관은 [[반남 박씨|반남]](潘南)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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