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콜레 1세 데스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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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년에 소금 독점권으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였고 [[교황 식스토 4세]]와 동맹을 맺은 [[베네치아 공화국]]과 일명 [[페라라 전쟁]](소금전쟁)을 치루었다. 전쟁은 1484년 바뇰로 조약 체결을 통해 [[폴레시네]]를 내주면서 끝낼 수 있었다. 페라라는 파국이나 교황청에 흡수되는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에르콜레가 병을 얻어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에 인접 국가들로 인해 에스테 가문의 재산이 파괴되는 굴욕을 겪었다.
 
전쟁 이후, 그는 [[이탈리아 전쟁 (1494년-1498년)|1494-98년1494년부터 1498년까지 벌어졌던 이탈리아 전쟁]]에서에서는 중립에중립을 있었고지켰고, 남은 그의 재임 기간에그후에는 [[교황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하였다개선하려 노력하였다. 그는 마지못하여, 그의 아들 알폰소를 주목할만한 토지를 증여해준알폰소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딸 [[루크레치아 보르자]]와의 결혼에 동의하였다.
 
후원자로서 그의 차후 인생은 초창기 군사적 차질을 보상해주는 듯 하였으며, 특별히 에르콜레는 로마 시대의 황제들처럼 주화에 얼굴을 새긴 유일한 이탈리아 통치자였다.<ref>Manca 1989; pp. 525, 529</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