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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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코이네 그리스어]]의 형용사인 '보편적인'‘공번(共繙)되다’된’<ref>[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623236&cid=50762&categoryId=50768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 자료집: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다’라는 뜻을 지닌 ‘공변되다’의 옛말. ‘가톨릭(보편적)’이란 의미로 쓰인다. 1880년 발간된 『한 · 불 자전』은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catholique’를 ‘공번되다’로 번역했으나, 지금은 ‘공번되다’ 대신 ‘보편되다’라고 쓴다.]</ref>또는 ‘보편(普遍)되다’라는적인’라는 뜻의 ‘카톨리코스’(καθολικός)에서 유래했으며, 2세기 초 교회를 설명할 때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ref>MacCulloch, ''Christianity'', p. 127.</ref> 카톨리코스라는 용어는 ‘모든 이를 아우르는’을 의미하는 καθ' ὅλου (카트 홀루)의 축약형인 καθόλου (카톨루)와 같은 개념이다.<ref>{{웹 인용|url=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catholic |title=Definition at www.Dictionary.com |publisher=Dictionary.reference.com |accessdate=2011년 6월 30일}}</ref> ‘가톨릭교회’(he katholike ekklesia)라는 용어는 서기 110년경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가 스미르나 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refn|group=note|성 이냐시오가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서신 (약 110 A.D.):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교회가가톨릭교회(보편교회)가 있듯이, 주교가 나타나는 곳에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ref name="CathEnc1910_Catholic" />|}} [[예루살렘의 키릴로스]]가 쓴 교리문답에서도 교회가 당시 [[유대교]]에서 분리된 다른 여러 종교 집단과 구분하고자 스스로 가톨릭교회라고 자처한 것으로 나온다.<ref name="CathEnc1910_Catholic">{{백과사전 인용|url=http://www.newadvent.org/cathen/03449a.htm |work=Catholic Encyclopedia | title=Catholic |publisher=Newadvent.org |date=1908년 11월 1일 |accessdate=2012년 8월 17일}}</ref><ref>{{웹 인용|url=http://www.tertullian.org/fathers2/NPNF2-07/Npnf2-07-23.htm |title=Cyril of Jerusalem, Lecture XVIII, 26 |publisher=Tertullian.org |date=2004년 8월 6일 |accessdate=2012년 8월 17일}}</ref>
 
1054년 [[교회 대분열]] 이후 동방 교회는 스스로 ‘[[동방 정교회|정교회]]’(Orthodox)라고 부르지만, [[교황]]과 친교를 이룬 [[서방 교회]]는 ‘가톨릭교회’(Catholic)라고 자처하였다. 그리고 16세기 [[서방교회]] 내부의 문제에 대한 [[종교개혁]] 시기 서방교회의 개혁 찬성파는 문제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교황]]과 대립하였고, [[교황청]]은 개혁 찬성파를 파문하여 관계는 단절되었고, 개혁 찬성파는 현재의 [[개신교회]]가 되었다. [[서방교회]]의 개혁 반대파는 교황청과 관계를 유지하여 현재의 로마 가톨릭교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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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라는 명칭은 《[[가톨릭교회 교리서]]》 등 교회의 공식 문서들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한 표현이다. 이 명칭은 [[교황 바오로 6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에 서명할 때에도 사용했었다.<ref>바티칸. [http://www.vatican.va/archive/hist_councils/ii_vatican_council/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2009년 5월 4일 확인. 참조: 교황의 라틴어 서명을 볼 수 있다.</ref> 그러나 교황청 문서 뿐만 아니라 지역 주교회의에서도 가끔씩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1908년에 출판된 《[[교황 비오 10세|성 비오 10세 교황]]의 교리문답》에서는 가톨릭교회와 교황과의 친교가 끊어진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구별을 위해 가톨릭교회 앞에 ‘로마’라는 글자를 삽입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cin.org/users/james/ebooks/master/pius/pcreed09.htm |title=The Catechism of St Pius X, The Ninth Article of the Creed, Question 20 |publisher=Cin.org |accessdate=2010년 10월 28일}}</ref>
 
[[동아시아]]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가리켜 ‘천주교’라고도 부른다. 천주교라는 명칭의 유래는 아시아 선교를 목표로 했던 [[예수회]] 사제 [[마테오 리치]]가 중국인의 사상을 연구한 후, 중국에서 온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는 조물주의 개념으로 천주(天主), 즉 하늘의 주인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음을 알고 천주라는 신적 개념을 활용한 결과 천주교라는 명칭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등록된 종교재단 명칭은 '천주교'이다. 따라서 교구의 정싱 명칭은 '천주교 지역명 교구'로 사용한다. 전래된 이후에 서학(西學), 천주학(天主學), 천주교(天主敎), 가톨릭교 등으로 혼용되어 오다가 주교회의에서 ‘천주교 또는 가톨릭교’를 선택 공인하여 《가톨릭 지도서》(''Directorium'', 1932년)에 규정함으로써 ‘천주교’도 교회의 공식 명칭이 되었다.
 
== 조직 및 통계 ==
로마 가톨릭교회의 지도는 [[성품성사]]를 받은 성직자들이 맡고 있다. 성직자들의 품계는 총 세 가지 품으로 분류하는데, 가장 으뜸은 [[주교|주교품]]으로서 일반적으로 [[교구 (기독교)|교구]]라고 불리는 자신의 지역을 사목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주교들 중에는 [[대주교]]라는 지위로 올라가는 일도 있지만, 이것들은 서품에 따른 위계가 아니라 교구의 규모에 따라 정해진 교회 행정상의 직무를 나타낸다. 즉 사제가 주교로 서품되는 일은 있어도, 주교가 대주교로 서품되는 일은 없다. 물론, 대주교 중에서도 명의 주교직을 갖는 대주교가 있다. 그 다음은 [[사제|사제품]]으로서 보통 주교로부터 지역 본당을 부여받아 사목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는 [[부제 (기독교)|부제품]]으로서 주교와 사제를 각종 전례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궁극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 전체를 지도하는 것은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이다. 여러 수도회 및 단체는 해당 지역 교구의 소속으로서 지역 교구장 주교의 재치권을 받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치적으로 활동한다. 이들 단체 가운데 오직 교황의 재치권만을 받는 곳도 더러 있다. 대부분의 수도회 및 단체의 회원은 성별로 서로 구별되어 있지만, 남성과 여성 모두를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곳도 있다. 추가적으로 평신도 회원들은 각종 전례 집전에 보조 자격으로 참여한다.
 
=== 중앙집권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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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의 보고체계 역시 매우 잘 발달되어 있어서 본당신부가 알아낸 일이나 시골 성당에서 발생한 사건 및 사고 등이 소속 교구장주교에게 보고되며 중대한 문제의 경우는 소속교구에서 교황에게까지 보고가 된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가톨릭은로마 가톨릭교회는 전세계 모든 종교들 중에 조직운영 및 조직관리를 가장 잘하는 종교이다.
 
=== 교황과 교황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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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법 ===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법]](CIC)은 교회의 고유한 조직과 운영, 그리고 신자들이 교회의 목적을 좇아 이루도록 합법적인 교회의 권위로 제정한 법을 말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영신적이면서도 가시적인 형태로 존재하며,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함께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법도 자연히 신약성경과 성전 안에 나오는 신법과, 교회와 인간이 제정한 실정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법의 제정 및 공표는 교황만이 할 수 있다. 교황은 보편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자기 임무에 의하여 교회에서 최고의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직권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ref>1983년 교회법 331항.</ref>
 
따라서 교회법이란 교회의 존재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의 고유한 조직과 운영 및 신자 생활의 규율을 정한 모든 법들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문법과 불문법이 포함된다. 성문법으로는 [[성경]]과 [[성전 (신학)|성전]]에 계시된 하느님의 실정법(jus divinum positivum)과 교회가 제정한 법률이 있고, 불문법으로는 자연법(jus naturale)이 있다.<ref>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교회법", 《한국 가톨릭 대사전》, 제1권, 713쪽.</ref> 현행 교회법([[1983년 교회법]])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1월 25일에 선포하여 1983년 대림 제1주일(11월 27일)에 발효되었는데, 전체가 1725 조항으로 되어있고, 전7권이며 내용은 총칙, 하느님 백성, 교도권, 성화권, 교회 재산 문제, 교회 형법, 교회 재판법의 순서로 되어 있다. 동방 가톨릭교회의 경우, 1990년 제정된 [[동방 교회법]](CCEO)의 적용을 받는다.
 
=== 자치 개별 교회 ===
로마 가톨릭교회 안에는 교리 문제에 있어서 교황의 최고 권위를 수용하는 23개의 자치 총대주교좌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다.<ref name="Gunton"/><ref>{{웹 인용|url=http://www.vatican.va/archive/hist_councils/ii_vatican_council/documents/vat-ii_decree_19641121_orientalium-ecclesiarum_en.html |title=''Orientalium Ecclesiarum'' |work=[[제2차 바티칸 공의회]] |accessdate=2011년 4월 30일 |at=2}}</ref> 이들 교회들을 아울러 ‘자치 교회’(sui iuris)라고 부른다. 이 교회들은 라틴 교회와 다른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이들의 전례 양식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통상 각 동방 자치 교회들은 총대주교 또는 대주교를 주축으로<ref name=CCEO56>[http://www.intratext.com/IXT/ENG1199/_P1K.HTM "''CCEO'', Canon 56."]. Intratext.com (영어 번역). 1990.</ref> 고유한 교회 조직 구성이나 전례 양식, 전례력, 기타 영성을 갖고 있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개별 교회는 [[라틴 교회]]이며, 신자 수가 대략 12억 명 이상으로 보고되고 있다. 본래 라틴 교회는 남유럽과 북아프리카에 걸쳐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서유럽과 중유럽, 북유럽까지 교세가 확장되어 오늘날에는 세계의 대부분에 널리 퍼져 있다. 라틴 교회는 스스로 [[서방 기독교|서방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교세가 큰 교회로 자부하고 있으며,<ref name="west_christ">[http://www.philtar.ac.uk/encyclopedia/christ/west/westessay.html "General Essay on Western Christianity"], ''Overview of World Religions''. Division of Religion and Philosophy, University of Cumbria. 1998/9 ELMAR Project. Accessed 1 April 2012.</ref> 여러 유럽 국가의 사상 및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위 [[종교개혁]] 이후 발생한 여러 [[개신교]] 교파들도 이러한 라틴 교회의 많은 유산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ref name="west_christ" />
 
라틴 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세는 적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중요한 교회가 바로 2010년 현재 약 1,730만 명의 신자와 22개의 자치 교회로 이루어진 [[동방 가톨릭교회]]이다.<ref name="Roberson">{{웹 인용|url=http://www.cnewa.org/default.aspx?ID=125&pagetypeID=1&sitecode=HQ&pageno=1 |author=Ronald G. Roberson |title=Eastern Catholic Churches Statistics 2010 |work=CNEWA |accessdate=30 April 2011}}</ref> 동방 가톨릭교회들은 [[동방 기독교|동방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영성을 따르되 교황과 항상 일치하였던 동방 그리스도교인들과 [[동서 교회의 분열]] 및 그 이전의 분열이 있은 지 수세기가 지나서 다시 교황과 일치하는 길을 선택한 동방 그리스도교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동방 가톨릭교회들은 자치적으로 주교 시노드를 통해 선출된 총대주교가 다스리고 있으며,<ref name=CCEO55_150>[http://www.intratext.com/IXT/ENG1199/_P1R.HTM "''CCEO'', Canons 55–150"]. Intratext.com (영어 번역). 1990.</ref> 또 다른 일부에서는 [[상급대주교]]<ref name=CCEO151_154>"''CCEO'', Canons 151–154". 1990.</ref>나 [[관구장 주교]]<ref name=CCEO155_173>"''CCEO'', Canons 155–173". 1990.</ref>, [[주교]]<ref name=CCEO>"''CCEO'', Canons 174–176". 1990.</ref> 등이 다스리고 있다. 교황청은 이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동방교회성]]이라는 부서를 두고 있다.
 
=== 교구와 본당, 수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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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례|#add8e6|~1백만 명}}]]
 
2015년 12월 통계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로마 가톨릭 신자 수는 약 1,284,810,000명으로 세계 인구의 17.7%를 차지하고 있다.<ref name="Cath pop steady"/>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증가율은 2.3%, 아메리카와 유럽의 증가율은 0.3%이며, 전체적으로 1.5% 증가하고 있다. 아메리카의 48.8%(5억 9,882만 명), 유럽의 23.5%(2억 8,687만 명), 아프리카의 16.0%(1억 9,859만 명), 아시아의 10.9%(1억 3,464만 명), 오세아니아의 0.8%(970만 명)가 가톨릭 신자이다.<ref name="Cath pop steady"/> 전체 기독교 신자 수에서 로마 가톨릭 신자 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ref>{{웹 인용|title=Major Branches of Religions Ranked by Number of Adherents |url=http://www.adherents.com/adh_branches.html#Christianity |accessdate=2009년 7월 5일 |publisher=adherents.com}}</ref>
 
유럽에서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를 보자면, [[라틴 유럽]]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이 있고, 비(非)라틴계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크로아티아]], [[체코]], [[헝가리]], [[아일랜드]], [[리투아니아]], [[몰타]],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이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스위스]], [[영국]]의 [[북아일랜드]] 지방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교세가 비슷하다.
 
아메리카에서도 로마 가톨릭 신자가 폭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앵글로아메리카]]보다 [[라틴 아메리카]]가 다수를 점유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에서 교세가 강하며, [[브라질]]은 세계에서 로마 가톨릭 신자의 절대 수효가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앵글로아메리카]]에서 [[미국]]은 2012년 말 기준으로 약 7,118만 명의 로마 가톨릭 신자가 거주하는 나라로 전체 국민의 4분의 1 가량이 가톨릭 신자이다. [[캐나다]] 역시 상당 수의 신자가 분포하여 현재 캐나다에서 최대 신자 수를 가진 종교로 꼽힌다.
 
아프리카에서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여러 나라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 신자는 [[콩고 민주 공화국]], [[나이지리아]], [[우간다]] 등에 많은 편이며, 국민 중 가톨릭 신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로는 [[세이셸]], [[우간다]], [[부룬디]] 등이 있다.
 
아시아에서는 전체 인구 중 그 비중은 낮으나, [[필리핀]]과 [[동티모르]]는 국민의 대다수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며, [[대한민국]]은 2015년 12월말 현재기준 559만 2,000명으로서389만 명으로서 전체 인구의 107.49%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ref>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ref>. 오세아니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에 로마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으며(2011년 현재 544만), 이외의 중소 국가들에도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
 
2015년을 기준으로 로마 가톨릭 성직자 수는 466,095명이다. 주요 성장 지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2000년도 이래 각각 39%와 32%가 증가하였다. 반면, 아메리카에서는 성장률이 그대로였고 유럽에서는 9% 하락하였다.<ref name="Cath pop steady"/> 2006년을 기준으로 가톨릭교회의 수도자 수는 724,559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 수도자인 [[수녀]]의 수는 670,330명이다.<ref name="news.bbc.co.uk">{{뉴스 인용|url=http://news.bbc.co.uk/2/hi/europe/7227629.stm |title=Europe &#124; Catholic nuns and monks decline |publisher=BBC 뉴스 |date=2008년 2월 5일 |accessdate=2013년 3월 12일}}</ref>
 
== 전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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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찬의 전례 거행 ===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전례를 통틀어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성체성사]]를 포함하는 [[미사]]([[성찬예배 (동방 교회)]])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오직 유효하게 수품된 사제만이 미사를 집전하여 제병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의 피|피]]로 [[성변화]]시킬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ref>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찬(성체)의 성사를 이룰 수 있는 집전자는 유효하게 수품된 사제뿐이다. - 1983년 교회법 900조.</ref> 가톨릭교회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제병과 포도주를 축성하면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 즉 [[성체]]와 성혈로 바뀐다고 가르친다. 즉 축성된 뒤에 제병과 포도주 자체가 남아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되 다만 제병과 포도주의 형상만 남아 있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체성사 안에 그리스도가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친다.<ref>《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 교리》, 354 page, 이중섭 신부, 가톨릭신문사</ref> 가톨릭 신자라 하더라도 죄중에 있는 사람은 사전에 [[고해성사]]를 보고 죄를 용서받은 후에야 비로소 성체를 영할 수 있다.<ref name="Kreeft331"/> 일반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성체를 영하기 전 1시간 동안 공복재를 지켜야 한다. 공복재란 성체에 대한 존경과 영성체를 준비하는 마음에서 어떠한 음식이나 음료의 섭취를 삼가하는 것이다.<ref name="Kreeft331">Kreeft, p. 331</ref> 하지만 물과 약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며, 노인이나 병약자,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들은 공복재 규정을 지키지 않고서도 성체를 영할 수 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성체를 영할 수가 없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모든 주일 (그리스도교)과 더불어 의무 대축일에 해당하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부활절|주님 부활 대축일]], [[성모 승천|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크리스마스|주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에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이다.
 
=== 서방 전례 양식 ===
[[로마 전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장 대표적이면서 일반적인 전례 양식이다. 이 전례 양식은 유럽의 선교사들의 활발한 선교 활동을 통해 전세계로 널리 퍼졌다.<ref name=AFAC>{{서적 인용|title=A Faraway Ancient Country.|year=2007|publisher=Gardners Books|location=United States|isbn=978-0-615-15801-3|page=216|url=http://books.google.com/books?id=q469xc7mbksC&lpg=PA1&pg=PP1#v=onepage&q&f=false|author=Emissary|editor=Karitas Publishing}}</ref> 현재 로마 전례의 일반 양식은 1969년판 로마 전례로서, 교회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보다는 나라별로 자국어로 봉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파일:Palm-sunday-latin-mass.jpg|thumbnail|left|[[트리엔트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모습.]]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더 오랜 관행’(usus antiquior)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마 전례의 특별 양식]]을 담고 있는 [[1962년판 로마 미사 경본]]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승인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cbck.or.kr/book/book_list5.asp?p_code=k5150&seq=401652&page=1&KPope=&KBunryu=&key=Title&kword=%B1%B3%C8%B2%20%BA%A3%B3%D7%B5%F1%C5%E4%2016%BC%BC |제목=2007년 7월 7일 1970년 전례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자의 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발표에 즈음하여 주교들에게 보내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서한 |확인날짜=2014년 8월 2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812164209/http://www.cbck.or.kr/book/book_list5.asp?p_code=K5150 |보존날짜=2015년 8월 12일 |url-status=dead }}</ref>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소집되기 몇달 전에 출판된 이 미사 경본은 1570년 [[트리엔트 공의회]]의 요청에 따라 [[교황 비오 5세]]가 표준화하여 반포한 [[트리엔트 미사]]의 마지막 개정판이다. 교황 비오 5세의 로마 미사 경본은 1604년 [[교황 클레멘스 8세]], 1634년 [[교황 우르바노 8세]], 1911년 [[교황 비오 10세]], 1955년 [[교황 비오 12세]] 그리고 1962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조금씩 개정되어왔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새로운 로마 미사 경본을 공표하면서, 1962년판 로마 미사 경본에 따라 미사를 거행하려면 교구장 주교의 승인을 사전에 받아야만 했다.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을 발표하여 신자들 없이 사제 혼자 임의로 또는 신자들이 요청하면 교구장 주교의 승인 없이도 사제가 자유롭게 트리엔트 미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베네딕토 16세는 또한 독서 봉독은 자국어로 읽는 것을 허용하였지만, 복음서를 봉독할 때는 오직 교회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로 낭송하도록 하였다.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도적 서한]] 《성공회 신자 단체》(Anglicanorum Coetibus)를 반포하여 [[성공회]]를 떠나 로마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루는 전(前) 성공회 신자들로 구성된 [[성직 자치단]]이 성공회의 전통에 따른 전례와 영성과 사목 전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ref name="Anglicanorum Coetibus">[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04913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교황령 「성공회 신자 단체」(Anglicanorum Coetibus)] {{웨이백|url=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04913 |date=20140826114646 }}. 2009년 11월 4일. 2011년 7월 31일 확인.</ref>
 
[[암브로시오 전례]]와 [[모자라빅 전례]]는 로마 전례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는 서방 전례의 일종으로서 일부 라틴 교회에서 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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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리 ==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계승하여 [[세계 공의회]]와 [[교황 교서]]의 판결에 따른 정통 신앙과 [[이단]]의 구분, 여러 신학자에 의한 신학적 토론을 두루 반영하여 수세기에 걸쳐 발전해왔다. 가톨릭교회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도록 위임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의 특별한 도움으로 어떤 종류의 교리적 오류나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고 믿고 있다([[교회의 무류성]]).<ref>{{웹 인용|url=http://info.catholic.or.kr/doctrine/view.asp?seq=6476&level1=1&level2=2&level3=3&level4=9&level5=4&level6=1&level7=3&lang=ko|work=가톨릭교회 교리서|publisher=바티칸|accessdate=2011년 4월 28일|title=가르치는 임무|quote=889.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이 전해 준 순수한 신앙으로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 교회를 당신의 무류성에 참여시키고자 하셨다.}}</ref><ref>{{웹 인용|last=제2차 바티칸 공의회|url=http://info.catholic.or.kr/concil/view.asp?kid=2&seq=2537&level1=3&level2=0&level3=3&level4=0&level5=0&level6=8&level7=&lang=ko|work=인류의 빛(Lumen Gentium)|publisher=Vatican|accessdate=2010년 7월 24일|title=제3장 25항|quote=성령의 빛으로 밝혀 주며&nbsp;... 자기 양 떼를 위협하는 오류를 경계하여 막는다.}}</ref>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성경]]과 [[성전 (신학)|성전]]을 이루어진 공적 계시를 근거로 삼고 있으며, 그 내용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모든 가톨릭 신자는 이 교도권에 따른 성경과 성전 해석에 따라야 한다.<ref>{{웹 인용|last=제2차 바티칸 공의회|url=http://info.catholic.or.kr/concil/view.asp?kid=3&seq=2762&level1=4&level2=0&level3=3&level4=0&level5=0&level6=4&level7=&lang=ko|work=하느님의 말씀(Dei Verbum)|publisher=바티칸|accessdate=2010년 7월 24일|title=성전과 성경의 온 교회와 교도직에 대한 관계|quote=기록된 하느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 이 권한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해석한다. 그리고 교도권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얻어 낸다.}}</ref> 가톨릭교회의 성경 권수는 [[구약성경]] 46권과 [[신약성경]] 27권을 합쳐 총 73권이다. 신약성경의 목록에 대해서는 동서방 교회 모두 이견 없이 받아들였지만, 몇몇 개신교도들은 이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ref group="note">개신교 지도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정경]]에서 개신교의 신조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오직 믿음(sola fide) 사상과 부분적으로 대치되는 내용이 있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을 제외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루터는 자신이 번역한 독일어 성경의 맨 마지막에 이들 책들을 수록하는 선에서 타협하였다. 루터는 또한 [[제2경전]]을 [[외경]]으로 분류하여 자신이 번역한 독일어 성경에서 제외하였다.<!-- copied from: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Biblical_canon&oldid=615830917--></ref> 구약성경의 경우, [[제2경전]]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개신교에서는 제2경전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지만, 동방 정교회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일부로 인정하고 포함시켰다.<ref>[http://books.google.com/books?id=CkoaDqWaB2YC&pg=PA146&dq=Bowley+%22clarify+what%22&hl=en&sa=X&ei=zaedU97UCeWO7AaO8YDoBw&ved=0CB0Q6AEwAA#v=onepage&q=Bowley%20%22clarify%20what%22&f=false James E. Bowley (editor), ''Living Traditions of the Bible'' (Chalice Press 1999 {{ISBN|978-0-8272-2159-8}}][[국제 표준 도서 번호|ISBN]]&nbsp;[[특수:책찾기/978-0-8272-2159-8|978-0-8272-2159-8]]<span>), pp. 146–147</span></ref> 성전은 전승 또는 전통이라고도 부르며, 사도 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온 교회의 기도와 가르침, 전례 예식, 권위 있는 저술 등을 가리킨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경과 성전을 모두 통틀어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성경과 성전이 다양하게 해석되어 큰 혼란이 일어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바로 교황과 교황과 온전히 일치하여 친교를 이루는 주교단으로 구성된 교회의 가르침이다(교도권).<ref name="Schreck30">Schreck, p. 30</ref>
 
로마 가톨릭 교리를 권위 있게 정돈하여 요약한 것이 성좌에서 출판한 《[[가톨릭교회 교리서]]》이다.<ref name="cat">Marthaler, preface</ref><ref>{{웹 인용|last=John Paul II|first=Pope|title=Laetamur Magnopere|publisher=Vatican|year=1997|url=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post_letters/documents/hf_jp-ii_apl_15081997_laetamur_en.html|accessdate=2008년 3월 9일}}</ref>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교리 부문은 [[사도신경]]의 각 조목을 체계화한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아타나시오 신경]] 또한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삼위일체 ===
{{참고|삼위일체}}
[[파일:Cristo crucificado.jpg|섬네일|[[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로마 가톨릭교회는 [[하느님]](또는 천주)은 한 분이지만 세 가지 위격을 지녔다고 믿는다. [[삼위일체]]는, 유일신이자 창조주인 하느님이 서로 구분되면서 완전히 동등한 삼위이며 친밀한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삼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다. 가톨릭교회가 고백하는 삼위일체 신앙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서는 세 분이 아니라 세 위격이신 한 분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세 위격은 서로 실제적으로 구분되지만 오직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실체이시다. 성부의 위격이 다르고 성자의 위격이 다르고 성령의 위격이 다르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은 하나이고, 그 영광은 동일하고, 그 위엄은 다 같이 영원하다.” 가톨릭 신자들은 기도를 바칠 때에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에게 바친다.<ref>《한국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p88-92.</ref>
 
로마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인 성자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성자는 인류 구원을 위하여 성령으로 인하여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어 신성을 잃지 않으면서 인성을 취하였는데, 이 사건을 [[강생]]이라고 부른다. 이 강생으로써 성자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모두 지닌, 참 하느님이면서 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거나 뒤섞이지 않고 결합되어 있다고 가르쳤다. 네 복음서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이 땅에 강생한 이유는 하느님의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그들이 믿고 충실히 따름으로써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이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존재임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 한 예로, 그는 사람들에게 자녀가 자기 아버지를 부르듯 친밀한 애정과 온전한 신뢰를 가지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쳤다.<ref>《한국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p75.</ref>
 
로마 가톨릭교회는 복음서가 전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가 성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여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리스도의 수난|수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써([[예수의 십자가형]]) 모든 사람이 하느님과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죄로부터 자유로워져 구원받을 자격을 되돌려 주었다고 가르치고 있다([[속죄]]). 그리고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원죄]] 때문에 불가능했던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길이 다시 열리게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죽어서 육체가 땅에 묻히고 썩어 없어지더라도 마지막 날에 예수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한다. 사도신경 중에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는 고백은 바로 이런 뜻이다. 이와 같이 예수의 부활은 가톨릭 신앙의 근거이며 핵심이다.<ref>《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 교리》, 이중섭 신부, 가톨릭신문사. p101.</ref> 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 신자라고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ref>“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 1코린 15,14.</ref>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부활한 다음 [[천국]]으로 승천하였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가 이 땅에 와서 사명을 완수했다는 것,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로서 하느님의 완전한 영광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세상 만물을 다르시고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주권이 성부와 함께 그리스도에게도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승천하면서 교회에 성령을 보내 주고, 성령과 함께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가톨릭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아들임을 믿고, 그의 이름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다.<ref>《한국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p77-78.</ref>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령의 발출(processio)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381년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라틴어판에 ‘[[필리오케 문제|필리오케]]’(Filioque; 성자에게서)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가 되었다. 이는 단지 신앙 고백의 또 다른 형태이거나, 라틴어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동방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교황과 친교를 이루는 동방 기독교에서도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ref group=note>《가톨릭교회 교리서》, 248: “동방 전통은 우선 성부께서 성령의 첫 기원이심을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요한 15,26) 성령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성자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나오신다는 것을 확언한다. 그러나 서방 전승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필리오케) 발하신다고 말함으로써 우선 성부와 성자께서 한 본체로서 이루시는 일치를 표현한다. 서방 교회는 이를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 본체로서 일치를 이루는 하느님 위격의 영원한 질서는, 성부께서 ‘근원이 없는 근원’으로서 성령의 일차적 근원이심을 내포하고 있지만, 한편 독생 성자의 성부로서 성자와 함께 ‘성령께서 나오신 유일한 근원’이시라는 사실 역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당한 보완은, 그것을 지나치게 고착시키지 않는다면, 동일하게 고백하는 신비의 실재를 믿는 신앙의 단일성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ref>
 
=== 사도 전승 ===
{{본문|사도 전승}}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의하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로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고백하는 ‘[[교회의 네 가지 속성|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이다.<ref group=note>《가톨릭교회 교리서》, 811: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이며, 우리는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 서로 불가분의 관계인 이 네 속성들은 교회와 교회 사명의 본질적 특성을 나타낸다. 이 속성들은 교회가 스스로 지니게 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당신의 교회를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가 되도록 해 주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이 특성들 하나하나를 실현하도록 촉구하신다.”</ref>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설립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는 [[열두 사도]]를 임명하여 자신의 사명을 계승하도록 하였다고 가르친다. 사도들은 바로 교회의 초기 [[주교]]들에 해당한다.<ref name="Kreeft98">Kreeft, p. 98, quote "The fundamental reason for being a Catholic is the historical fact that the Catholic Church was founded by Christ, was God's invention, not man's&nbsp;... As the Father gave authority to Christ (Jn 5:22; Mt 28:18–20), Christ passed it on to his apostles (Lk 10:16), and they passed it on to the successors they appointed as bishops."</ref>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가 승천하면서 사도들에게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약속했기 때문에, 사도들의 권한은 단절되지 않고 그들에게 서품받은 후계자들인 주교들이 계승하고, 또 주교들을 후임 주교들이 계승하는 방식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행사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ref name="OneFaith46">Barry, p. 46</ref> 특히 로마의 주교인 교황은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후계자인데, 교황은 그의 수위권을 이어받아 교회에서 행사하고 있다.<ref group=note>《가톨릭교회 교리서》, 880: “그리스도께서는 열두 사도를 세우시면서 그들을 확고한 단체 또는 집단의 형태로 세우시고, 그들 가운데에서 선택하신 베드로를 으뜸으로 삼으셨다. 주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거룩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의 사도단을 이루듯이, 비슷한 이치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ref> 가톨릭교회는 또한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관하여》(Mystici Corporis Christi)에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자처하고 있다.<ref>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http://www.vatican.va/holy_father/pius_xii/encyclicals/documents/hf_p-xii_enc_29061943_mystici-corporis-christi_en.html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 바티칸 시국, 1943. 2011년 8월 20일 확인.</ref>
 
따라서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를 제외한 다른 많은 기독교 교파가 저마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라고 하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주장은 유일한 교회와 보편된 교회에 반대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로마 가톨릭교회까지 포함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아류고 참된 교회가 아니므로 참된 교회는 [[교회 일치 운동]]을 통하여 세상 종말에 비로소 실현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비록 갈라져 나간 기독교 교파들이 부족한 점은 있어도 구원의 신비에서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성령은 다른 교파들 안에서도 활동하고 다른 교파들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교파에 좋은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원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다 있는 것은 아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의 방법을 충분히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 외에는 완전한 구원 기관이 없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원칙이다.<ref>《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 교리》, 가톨릭신문사. p137-138 참조.</ref> 아울러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태도를 버리고 대화하고 협력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되 그것이 [[종교 다원주의]]나 종교 상대주의로 빠지는 것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ref group=note>[[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36: “선교 사업을 동결시키는 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신자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그릇된 신학적 견해에 의거하는 신앙 무차별주의이다. 이러한 종교적 상대주의는 모든 종교는 다 나름대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낳게 한다. … 이에 관해서 나는 신학자들과 언론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교회와 함께 생각한다는 바른길에 서서, 교회의 사명에 이바지하는 그들의 사업의 깊은 뜻을 발견하기를 간절히 권고하는 바이다. 우리는 결코 내적·외적 난관 때문에 비관론자가 되거나 무위도식자가 될 수는 없다.”</ref>
 
=== 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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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ichelangelo Buonarroti - Jugement dernier.jpg|섬네일|[[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죽은 후에 곧바로 하느님으로부터 개별적으로 심판([[사심판]])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ref>《가톨릭교회 교리서》 1021-1022항.</ref> 교회는 또한 언젠가 그리스도가 산 이와 죽은 이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에 대한 보편적 심판을 거행할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세상 종말에 이르러 우주적 이변이 발생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가 천상 세계로부터 이 땅에 재림하여 [[공심판]](최후의 심판)을 거행함으로써 인류 역사는 종식되고 하느님의 정의로운 통치를 받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그 때에 죽었던 사람들은 부활하여 분리되었던 영혼과 육신이 재결합하고,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심판자 그리스도로부터 심판을 받는데, 의인들은 천국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고 악인들은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ref>박도식, 《천주교 주요 교리》, 70항.</ref> 각자의 심판 기준은 [[마태오 복음서]]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가 세상에 알려 준 사랑의 법을 어떻게 실천했는가에 따른다.<ref>마태 25,35–36.</ref> 특히 그리스도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고 강조하였다.<ref>마태 7,21.</ref> 공심판이 언제 일어날 지에 대해서는 성부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ref>마르 13,32.</ref>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의하면, ‘최후의 심판 때에 각 사람이 지상 생활 동안 선을 행하였거나 이를 소홀히 한 일의 궁극적 결과까지도 드러날 것’이라고 한다.<ref>《가톨릭교회 교리서》 1039항.</ref> 죽은 후부터는 범죄하거나 공로를 쌓을 수가 없으며, 육체를 떠난 영혼은 심판의 결과에 따라 다음 세 곳 가운데 한 곳으로 가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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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마리아론}}
 
15세기로마 이전에 생긴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종파가 그러하듯이, 가톨릭교회 역시도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리아]]를 ‘성모’(聖母) 또는 ‘복되신 동정녀’라고 부르며 특별히 공경하고 있는데, 이는 마리아를 신적 존재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하느님에 대한 흠숭을 구별하고 있다. 하느님에게는 [[흠숭지례]]를, [[천사]]들과 [[성인 (종교)|성인]]들에게는 [[공경지례]]를 드리는데, 성인들 가운데 특별히 마리아에게는 더 높은 공경인 [[상경지례]]를 드린다고 가르친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에게 기도할 때 무언가를 들어 달라고 직접적으로 청한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들과 천사들에게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한다. 즉, 성모 마리아를 포함한 성인들과 천사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 천사들은 지상의 신자들을 위해 전구해주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마리아가 [[마리아의 평생 동정|영원한 동정녀]]이자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로서 원죄에 조금도 물들지 않고 태어났으며([[원죄 없는 잉태]]), 지상 생애를 마친 후에는 육신과 영혼이 모두 그리스도에 의해 천국에 들어올림을 받았다고 믿는데([[성모 승천]]), 이 두 믿음은 각각 1854년 [[교황 비오 9세]]와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교황 무류성]]에 따라 마땅히 믿어야 할 [[교의]]로 선포되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인 [[마리아론]]은 마리아의 생애 뿐만 아니라 그녀에 대한 신심과 기도, 미술, 음악, 건축 등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례력에는 마리아를 기념하는 축일들이 많이 있다. 또한 5월은 성모 성월, 10월은 묵주기도 성월로서 1년 중 두 달이 마리아와 관련된 성월이다. 이와 관련해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에서 “그리스도 다음으로 가장 높고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시는 마리아의 위치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28항)고 밝혔다.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는 대표적인 가톨릭 기도문으로는 [[성모송]]과 [[묵주|묵주기도]], [[살베 레지나]] 등이 있다.<ref>Barry, p. 122–123</ref>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 발현]]은 [[루르드의 성모]], [[파티마의 성모]], [[과달루페의 성모]] 등이 있다.<ref>Schreck, p. 368</ref> 성모 발현이 일어난 장소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찾는 순례지이기도 하다.<ref>{{뉴스 인용|last=Baedeker |first=Rob |title=World's most-visited religious destinations |work=USA Today |date=2007년 12월 21일 |url=http://www.usatoday.com/travel/destinations/2007-12-21-most-visited-religious-spots-forbes_N.htm |accessdate=2008년 3월 3일}}</ref>
 
== 역사 ==
[[파일:Perugino - Entrega de las llaves a San Pedro (Capilla Sixtina, 1481-82).jpg|섬네일|[[피에트로 페루지노]]가 [[시스티나 경당]]의 벽화로 그린 작품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성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로마 가톨릭 전승과 교리에 의하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1세기경 [[로마 제국]] 치하의 [[유데아 (로마 속주)|유데아 속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설립한 유일한 참 교회이다.<ref>{{웹 인용 |url=http://mobile.catholic.or.kr/web/doctrine/?flag=1&seq=6453 |work=가톨릭교회 교리서 |title=제4단락 그리스도 신자: 성직자, 평신도, 봉헌 생활자 |publisher=Vatican.va |accessdate=2013년 3월 12일 }}<p>{{웹 인용 |url=http://www.princeton.edu/~achaney/tmve/wiki100k/docs/Sacraments_of_the_Catholic_Church.html |title=Sacraments of the Catholic Church |publisher=Princeton.edu |accessdate=2013년 3월 1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0606210716/http://www.princeton.edu/~achaney/tmve/wiki100k/docs/Sacraments_of_the_Catholic_Church.html |보존날짜=2013년 6월 6일 |url-status=dead }}<p>{{웹 인용 |url=http://www.orthodoxresearchinstitute.org/articles/pastoral/church_membership.htm |title=Church Membership |publisher=Orthodoxresearchinstitute.org |accessdate=2013년 3월 12일 }}<p>{{웹 인용|url=http://www.ewtn.com/faith/teachings/chura5.htm|title=Basic Catholic Catechism;The Church and Salvation|author=Most, Fr. William G.|publisher=Eternal Word Network Television|year=1990|accessdate=2013년 12월 12일}}</ref> 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과 가르침 그리고 [[열두 사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과 그들에게 지시한 과업 등이 기록되어 있다.<ref name="Kreeft98O">Kreeft, p. 980.</ref><ref name=bokenkotter30>Bokenkotter, p. 30.</ref>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령강림주일|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령이 내려와 사도들에게 임한 사건(사도 2,1)이 가톨릭교회의 공적인 사목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ref name=autogenerated8>Barry, p. 46.</ref> 로마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연속선상에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또한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마태 16,13-20)에 의해 그리스도가 사도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을 자신의 지상 교회의 머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이 바로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이다.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사도 전승]]이라고 부른다.
=== 로마 제국 시대 ===
[[파일:Jean-Léon Gérôme - The Christian Martyrs' Last Prayer - Walters 37113.jpg|섬네일|220px|left|[[장레옹 제롬]]의 '''기독교 순교자들의 마지막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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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
로마 가톨릭교회는 고대 말엽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명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ref name="O'CollinsPref">Gerald O'Collins, p. v (preface).</ref> 가톨릭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매너리즘 양식, 바로크 양식 등 미술과 건축, 음악 등의 예술 분야에 있어서 주요 후원자였다.<ref>Woods, pp. 115–27</ref>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프라 안젤리코]], [[티치아노]], [[베르니니]], [[카라바조]] 등은 모두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고 작품을 만들었다.<ref>Duffy, p. 133.</ref>
 
8세기에 [[교황 알렉산데르 2세]] 때부터 소바나의 일데브란도를 주축으로 하여, [[추기경단]]이 생기게 되었다. 알렉산데르 2세가 선종한 후에 일데브란도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그가 바로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이다. 그레고리오 7세는 추기경단 체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을 세웠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레고리오 7세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교회 성직자들을 독립하는 것과 관련해서 훗날 [[그레고리오 개혁]]이라 불리게 된 일대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로 인하여 주교를 서임하는 권한을 놓고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사이에 [[서임권 투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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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발생한 종교 개혁은 [[개신교]] [[슈말칼덴 동맹]]과 가톨릭 측의 대표인 [[카를 5세]] 황제 사이에 전쟁을 불러왔다. 양측의 첫 번째 충돌은 9년 전쟁으로서 1555년에 종전했지만, 긴장 상태는 계속 이어져 결국 1618년에는 더 큰 충돌인 [[30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30년 전쟁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는 데 합의함으로써 종식되었으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140208&ACID=44&S=|제목=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71) 반종교 개혁|날짜= 2003-01-12 |출판사=가톨릭신문|확인날짜=2012-4-29|저자=박영호 기자}}</ref> 프랑스에서는 1562년부터 1598년까지 [[위그노]] 교도와 [[가톨릭 동맹 (프랑스)|프랑스 가톨릭 동맹]] 간에 [[위그노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재임한 교황들은 가톨릭 동맹 편에 서서 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프랑스 내 가톨릭 동맹과 위그노 세력의 분쟁은 1598년 [[앙리 4세]]가 종교적 관용 정신에 따라 개신교도들을 국가의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예배 자유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낭트 칙령]]이 반포되고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끝을 맺게 되었다.<ref name="Vidmar233">Vidmar, ''The Catholic Church Through the Ages'' (2005), p. 233</ref>
 
기존의 가톨릭교회로부터로마 가톨릭교와 개신교가 분열되면서 이 분열을 치유하려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는데, 이러한 교회 쇄신 운동을 19세기 초 역사가들은 가톨릭 종교 개혁 또는 대응 종교 개혁이라고 불렀다. 가톨릭 개혁은 개신교 종교 개혁 이후 일어난 반가톨릭 운동의 확산을 저지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명확히 하려고 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바로 이러한 가톨릭 개혁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교리적으로는 [[성변화]]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과 소망, 사랑이 필수 조건이라는 가르침과 같이 가톨릭교회의 핵심 교리들을 재차 확인하였다.<ref name="Bokenkotter242">Bokenkotter, pp. 242–244</ref> 또한,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설립한 [[예수회]]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한 영성 생활 지도와 유럽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 다른 나라의 전통을 존중하는 선교 활동, 자선 활동, 청소년 교육과 신학 연구 등을 통해 가톨릭 개혁과 신앙 복구의 원동력이 됨으로써 가톨릭 쇄신 운동의 중추가 되었다.
 
=== 근세 ===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서유럽의 정치적·문화적 영향력이 세계 전역으로 뻗어 나갔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로마 가톨릭 국가들은 서구의 식민지 정책에 있어 큰 역할을 하였다. 이들 나라들의 활발한 탐험과 정복 활동을 통해 식민지들의 사회적·정치적 일대 변화가 일어나면서 동시에 가톨릭 신앙이 아메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로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새로이 발견된 땅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으며,<ref name="Koschorke13">Koschorke, p. 13, p. 283</ref> 뒤이어 이들 나라에 국왕 교회 보호권을 부여하여 식민지의 새 성직자 임명권을 바티칸이 아니라 세속 국가 정부가 갖는 것을 허용하였다.<ref>Hastings (1994), p. 72</ref> 1521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필리핀을 처음으로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ref name="Koschorke21">Koschorke, p. 21</ref> 다른 한편, 스페인의 예수회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주도 아래 포르투갈의 선교사들이 인도와 중국, 일본에 복음을 전하였다.<ref name="Koschorke3">Koschorke, p. 3, p. 17</ref>
 
17세기 중반부터 [[계몽주의]]가 서구 사회를 휩쓸면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권위와 질서에 대한 의구심과 반발심이 생겨났으며,<ref name="Pollard8">Pollard, pp. 7–8</ref> 18세기에는 [[볼테르]]와 같은 문학가들과 [[백과전서]] 편집자들이 교회를 강력하게 비평하는 글들을 썼다. 그들이 비난한 것 중의 하나는 1685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100여년간에 걸친 개신교 위그노교도들에 대한 종교적 관용의 상징이었던 [[낭트 칙령]]을 철회하고, [[퐁텐블로 칙령]]을 새로이 반포한 것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면서 권력의 중추가 교회에서 혁명 정부로 이동하였으며, 프랑스 전역에서 수많은 성당이 파괴되고 [[이성 숭배]]가 들어섰다.<ref name="Bokenkotter285">Bokenkotter, pp. 283–285</ref> 1798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장군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교황 비오 6세]]를 사로잡아 감금하였다. 비오 6세는 결국 끝끝내 프랑스군으로부터 풀려나지 못하고 선종하였다. 나폴레옹은 나중에 1801년 [[정교협약]]을 체결함으로써 프랑스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재건되었다.<ref name="Collins176">Collins, p. 176</ref> 나폴레옹 전쟁이 종식되면서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회는 재부흥하였으며, [[교황령]]도 회복되었다.<ref>Duffy, pp. 214–216</ref>
 
[[교황 비오 9세]]는 1851년부터 1853년까지 주교들의 자문을 구한 후, 1854년 대다수 주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교의]]로 공식 선언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alpha/data/aud19930324en.html |title=John Paul II, General Audience, March 24, 1993 |publisher=Vatican.va |date=1993년 3월 24일 |accessdate=2011년 6월 30일}}</ref>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 무류성]]의 교리적 정의를 내렸다.<ref name="Leith">Leith, ''Creeds of the Churches'' (1963), p. 143</ref><ref name="Duffy232">Duffy, ''Saints and Sinners'' (1997), p. 232</ref> [[교황 무류성]]과 기타 문제들에 있어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반발하여 독립한 무리는 스스로 [[구 가톨릭교회]]라고 자처하고 있다.<ref name="Fahlbusch">Fahlbusch, ''The Encyclopedia of Christianity'' (2001), p. 72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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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정치적으로 근본주의적이고 [[반성직자주의]]적 성향의 정부들이 증가한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1926년 멕시코에서 정교 분리를 내세운 칼레스법이 통과되어, 3천 명 이상의 사제들이 추방당하거나 살해당했으며,<ref name="Scheina">Scheina, p. 33.</ref> 성당들은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되었고, 전례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며, 수녀들은 강간당하고 수감당한 사제들은 총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ref name="Chadwick264"/> 결국 [[크리스테로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ref name="Chadwick264">Chadwick, Owen, pp. 264–265</ref> 러시아에서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수립된 [[소비에트 연방]] 정부의 주도로 1930년대까지 현지에 있는 가톨릭교회가 박해당하였다.<ref>Riasanovsky 617</ref>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 평신도들이 처형이나 유배형에 처해졌으며, 교회 재산은 압류당했으며, 모든 성당이 사실상 문을 닫게 되었다.<ref name="Riasanovsky 634">Riasanovsky 634</ref>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전개된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가톨릭교회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인민 전선 (스페인)|인민 전선]] 정부의 교회에 대한 [[적색 테러 (스페인)|적색 테러]]<ref>Alonso, pp. 395–396</ref>에 대항하기 위해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스트들과 동맹을 맺었다.<ref>Payne, p. 13</ref> [[교황 비오 11세]]는 이들 세 나라를 ‘끔찍한 삼위일체’로 언급하면서 결국 몰락할 것이며,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이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며 방관하는 것은 사실상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크게 질타하였다.
 
1933년 바티칸 시국과 나치 독일 간에 교회의 보호와 권리를 보장하는 [[제국종교협약]]이 체결된 이후,<ref name="Rhodes182">Rhodes, p. 182-183</ref> 교황 비오 11세는 공개적으로 교회에 대한 나치스의 억압과 더불어 그들의 인종우월주의 사상과 [[신이교주의]]를 비판하는 회칙 《극도의 슬픔으로》(Mit brennender Sorge)를 1937년에 반포하였다.<ref name="Rhodes197">Rhodes, p. 197</ref> 1939년 9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후, 교회는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뒤이은 1940년의 계속된 침공들을 단죄하였다.<ref name="Cook983">Cook, p. 983</ref> 그러자 나치 독일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 도처에서 수천만 명의 로마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수감하고 살해하는 방식으로 맞대응하였다. 이 때 순교한 성인들로는 [[막시밀리아노 콜베]]와 [[에디트 슈타인]]이 있다.<ref>{{웹 인용|url=http://www1.yadvashem.org/yv/en/holocaust/about/01/non_jews_persecution.asp |title=Non-Jewish Victims of Persecution in Germany |publisher=야드 바셈|accessdate=2010년 10월 28일}}</ref> [[홀로코스트]]가 벌어지는 동안 [[교황 비오 12세]]는 가톨릭 관련 기관들에게 나치스로부터 비밀리에 유대인들을 보호할 것을 지시하였다.<ref>Bokenkotter p. 192</ref>
 
전후 수립된 동유럽의 공산주의 정부들은 종교적 자유를 심하게 제한하였다.<ref name="communist">{{뉴스 인용|title=Pope Stared Down Communism in Homeland&nbsp;– and Won|publisher=CBC 뉴스|date=2005년 4월|url=http://www.cbc.ca/news/obit/pope/communism_homeland.html|accessdate=2008년 1월 31일|url-status=dead|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1223141702/http://www.cbc.ca/news/obit/pope/communism_homeland.html|보존날짜=2007년 12월 23일}}</ref> 비록 일부 사제들이 굴복하여 공산주의 체제에 협력하기는 했지만,<ref>{{뉴스 인용|last=Smith|first=Craig|title=In Poland, New Wave of Charges Against Clerics|work=뉴욕 타임즈|date= 2007년 1월 10일|url=http://www.nytimes.com/2007/01/10/world/europe/10poland.html|accessdate=2008년 5월 23일}}</ref> 대다수 사제들은 투옥되거나 추방당했으며 심지어는 처형당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톨릭교회는 [[동유럽 혁명|동유럽 공산주의권의 몰락]]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ref>{{웹 인용|url=http://www.thetablet.co.uk/article/14023 |title=Untold story of 1989 |publisher=타블렛 |accessdate= 2010년 10월 28일}}</ref> 1949년 [[국공 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원들은 모든 외국인 선교사를 추방하였다.<ref name="Bokenkotter357">Bokenkotter, pp. 356–358</ref> 그리고 새로 수립된 중국 공산 정부는 1957년 7월 [[중국천주교애국회]]를 만들어 성좌의 승인 없이 일방적으로 주교들을 직접 서품함으로써 로마와 결별을 고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bbc.co.uk/1/hi/world/asia-pacific/7005927.stm |title=China installs Pope-backed bishop |publisher=BBC News |date=22007년 9월 21일 |accessdate=2010년 10월 28일}}</ref> 1960년대 일어난 [[문화 대혁명]]은 모든 종교 시설의 폐쇄를 초래하였다. 이후 중국의 성당들은 중국천주교애국회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면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이때부터 중국 정부와 중국천주교애국회의 방침을 거부하고 베드로좌와 일치하려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어들게 되었다.<ref>Chadwick, p.25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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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cond Vatican Council by Lothar Wolleh 007.jpg|섬네일|[[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의 모습.]]
 
[[트리엔트 공의회]]가 폐막한 지 4세기 만인 1963년에 소집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교황 요한 23세]]의 요청으로 소집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를 라틴어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언어로 봉헌하는 것을 허용하고, 평신도들도 적극적으로, 의식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현대화하였다.<ref>{{웹 인용|url=http://info.catholic.or.kr/concil/view.asp?kid=1 |title=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 |publisher=Vatican.va |date=1963년 12월 4일 |accessdate=2012년 1월 12일}}</ref>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와 현대 세계와의 대화([[아조르나멘토]])를 목표로 한 획기적인 공의회로서,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창문이 활짝 열렸다’고 표현하였다.<ref name="Duffy272">Duffy, pp. 270–276</ref>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전례의 개정 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교 교파들과의 [[교회 일치 운동]]에 착수하였으며,<ref>Duffy, ''Saints and Sinners'' (1997), p. 272, p. 274</ref> 다른 종교들, 특히 [[유대교]]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되었다.<ref name="NOSTRA AETATE">교황 바오로 6세, [http://info.catholic.or.kr/concil/view.asp?kid=15&seq=4584&level1=16&level2=0&level3=0&level4=4&level5=0&level6=0&level7=&lang=ko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Nostra Aetate)]. 1965년 10월 28일. 2011년 6월 16일 확인. 4. 유다교 : “비록 유다인 지도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강요하였지만, 당시에 살고 있던 모든 유다인에게 그리스도 수난의 책임을 차별 없이 지우거나 오늘날의 유다인들에게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교회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임에는 틀림없으나, 마치 성경의 귀결이듯이, 유다인들을 하느님께 버림받고 저주받은 백성인 것처럼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리를 가르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복음의 진리와 그리스도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을 가르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ref>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시행하면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한스 큉]]과 같은 진보주의자 내지는 해방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충분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ref>Bauckham, p. 373</ref> 이와는 반대로 [[마르셀 르페브르|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같은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강하게 비판하였으며, 특히 전례 개혁이 미사와 성사들의 거룩함을 파괴하도록 이끌었다고 성토하였다.<ref>O'Neel, Brian. [http://www.catholic.com/thisrock/2003/0304fea2.asp "Holier Than Thou: How Rejection of Vatican II Led Lefebvre into Schism"] {{웨이백|url=http://www.catholic.com/thisrock/2003/0304fea2.asp |date=20100510014807 }}, ''This Rock'', Volume 14, Number 4. San Diego: Catholic Answers, 2003년 4월.</ref>
 
1978년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의 크라쿠프 대교구장이었던 카롤 보이티와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455년 만에 처음으로 비이탈리아인 교황이 선출되었다. 그의 재위기간은 27년으로 오래 재위한 교황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history.co.uk/this-day-in-history/April-02.html;jsessionid=08931E713115A304B13BB1A6FA315A63.public1 |title=2&nbsp;April – This Day in History |publisher=History.co.uk |accessdate=2010년 10월 28일}}</ref> 이 폴란드인 교황은 소비에트 연방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더불어 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을 재촉한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ref>{{뉴스 인용|author=Peter and Margaret Hebblethwaite and Peter Stanford |url=http://www.guardian.co.uk/world/2005/apr/02/guardianobituaries.catholicism |title=Obituary: Pope John Paul II |work=가디언 |date= 2005년 4월 2일|accessdate=2010년 10월 28일 |location=런던}}</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