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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
일본 프로 야구가 양대 리그로 분리되면서 주요 투수와 타자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1950년대 초반 한큐 브레이브스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1952년]]에는 홈구장인 니시노미야 구장에 야간 경기를 위한 조명 설비가 완성되어 야간 경기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 시기, 한큐 브레이브스의 유니폼은 검은 바탕에 흰색의 줄무니가줄무늬가 그어져 있는 디자인이어서 야간 경기를 하기 수월했기 때문에 한큐 브레이브스는 ‘밤의 용자’({{lang|ja|夜の勇者}})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53년]] 한큐는 [[루퍼스 게인즈]], [[래리 레인스]], [[존 브리턴]] 등과 같은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여 여름 기간에 10연승을 거두고 2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투수로는 [[1954년]]에 [[가지모토 다카오]], [[1956년]]에 [[요네다 데쓰야]]가 차례로 입단하였으며 타자 및 야수로는 [[고노 아키테루]], [[로베르토 바르본]]이 등장하면서 1950년대 후반에는 5년 연속 도루왕 자리를 한큐가 가져갔지만 성적이 저조하여 감독이 자주 교체되었다. [[1958년]]에는 회사 명칭을 '''주식회사 한큐 야구 클럽'''({{llang|ja|株式会社阪急野球倶楽部|가부시키가이샤 한큐 야큐 쿠라부}})에서 '''주식회사 한큐 브레이브스'''({{lang|ja|株式会社阪急ブレーブス}})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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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
1970년대에도 한큐의 전성기는 계속되었다. [[1970년]]에는 4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1971년]]과 [[1972년]]에는 2년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센트럴 리그]]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전성기를 맞이하여 일본 시리즈에서는 두 구단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특히, [[1971년 일본 시리즈]] 3차전 경기에서는 양팀 모두 1승 1패였던 상황에서 1-0으로 9회 초까지 한큐가 유리한 상황을 이끌었으나 9회 말 야마다 히사시의 공을 [[오 사다하루]]가 역전 3점 홈런으로 때려내어 패배했다가 다음 3연전에서 한큐가 요미우리를 연속으로 이겨 우승할 수 있었다. [[1973년]] 시즌부터는 전·후기제로 나뉘었으나, 후기 시즌 1위를 거두었음에도 리그 우승에 실패하여 구단은 니시모토 감독을 경질하게 된다. [[1974년]]에는 새로 감독으로 부임한 [[우에다 도시하루]]가 감독 부임 첫 해에 2위의 성적으로 우승하지 못했으며 [[1975년]]에는 0.520의 승률<ref>일본 프로 야구 역사 상 가장 낮은 승률로 우승한 기록이다.</ref>로 우승을 거두었고 [[1976년]]과 [[1978년]]에는 전·후기 통합 1위로 우승을 거두는 등 1978년까지 4년 연속 우승 기록을 달성했다. 이 시기 한큐는 야마구치 다카시, 야마다 히사시, 가토 에이지히데지, 후쿠모토 유타카, 그리고 [[바비 마르카노]], [[버니 윌리엄스 (1948년)|버니 윌리엄스]] 등 두 외국인 선수가 활약하였다.
 
그러나 [[1978년 일본 시리즈]] 7차전에서 상대였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타자 [[오스기 가쓰오]]가 때린 좌측 관중석으로 향한 공이 홈런으로 인정되자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은 당시 판정을 내린 도미자와 히로야 심판과 1시간 19분 동안 논쟁을 벌였지만 결국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으며, 우에다 감독은 언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1979년]]에는 우에다 감독의 후임으로 [[가지모토 다카오]] 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하여 팀의 지휘를 맡아 에이스 야마다가 21승 5세이브, 가토 에이지가히데지가 타율 0.364, 35개의 홈런, 104점의 타점을 기록하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여 우승하지 못했다.
 
=== 1980년대 ~ 1988년의 구단 양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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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병 이후 ===
2005년은 합병과 [[오기 아키라]]의 감독 복귀로 전력은 큰폭으로 상승한 시즌이었다. 폐암과 싸우면서도 지휘를 맡은 오기 감독 아래에서 팀은 끝까지 A클래스 싸움을 계속했지만 결국 4위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 후 오기는 감독을 퇴임하여, 구단 제너럴 매니저였다 [[나카무라 가쓰히로]]가 감독으로 취임하며 일본 야구 최초로 GM 출신 감독이 되었다.오기는 구단의 시니어 어드바이저로 취임했지만, 12월 15일 폐암에 의한 호흡 부전 때문에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로 부터 FA가 된 [[기요하라 가즈히로]]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있던 [[나카무라 노리히로]]를 영입했지만, 8월 2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니혼햄 파이터스]]전에서 져 7년 연속 B클래스가 확정되어, 5위에 그쳤다. 성적 부진의 책임을 져 나카무라는 사임하였고, 10월 6일에 다저스 육성 부장이었던 테리 콜린스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11월 20일 지금까지 [[고베시]]([[스카이 마크 스타디움]]내)에 있던 구단 사무소를 [[오사카시]] [[기타구 (오사카시)|기타구]] 도지마에 이전했다. 그 결과, 구단 업무의 대부분(구단 본부, 오사카 영업부, 팬 서비스부 등)이 오사카에 몰려 고베 사무소는 고베 영업부 등 일부 업무에만 한정하는 등, 구단의 경영 기능은 큰 폭으로 오사카로 옮겨졌다. 또한, 홈 구장은 잠정적으로 고베로 옮겼지만 시즌 종료와 함께 오사카에 되돌려지면서, [[오사카 돔]]의 시합수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