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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일본]]이 [[20세기]] 하반기에 세계적인 전자제품 생산국이 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57년]]에 소니는 세계 최초로 포켓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하였으며, [[1960년]]에 최초의 트랜지스터 흑백 텔레비전을 개발하였고, [[1969년]]에 [[트리니트론]]을 출시하였다. 트리니트론은 소니를 세계 1위의 텔레비전 회사로 만들어주었으며, [[1973년]] [[미국]] [[에미 상]]을 수상, 이는 사람이 아닌 물건이 수상한 최초의 사례로 남았다. [[1994년]]에 트리니트론은 1억대의 판매량을 달성하였다. 당시로서 가장 많이 팔린 가전제품 중 하나로 알려졌다.
 
미국 [[NASA]]는 [[아폴로 7호]]부터 소니의 [[TC-50]] 레코더를 [[우주비행사]]들에게 지급하여 우주에서 사용토록 하였다. [[1979년]]에 소니는 아이콘적인 포터블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을 출시하여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소니는 [[1969년]]에 산업용 및 소비자용 컬러 [[비디오테이프 레코더]](VCR) 프로토타입을 발표하였고 [[1971년]]에 최초의 [[비디오카세트|비디오 카세트]]를 시판하였다. [[1975년]]에 혁신적이지만 실패의 교과서가 되어버린 [[베타맥스]] 포맷을 발표하였다. [[1982년]]에 소니는 [[네덜란드]] [[필립스]]와 같이 개발한 [[컴팩트 디스크]](CD)를 공개하고 최초의 [[CD 플레이어]] 'CDP-101'을 출시하였다.
 
소니는 [[1969년]]에 산업용 및 소비자용 컬러 [[비디오테이프 레코더]](VCR) 프로토타입을 발표하였고 [[1971년]]에 최초의 [[비디오카세트|비디오 카세트]]를 시판하였다. [[1975년]]에 혁신적이지만 실패의 교과서가 되어버린 [[베타맥스]] 포맷을 발표하였다. [[1982년]]에 소니는 [[네덜란드]] [[필립스]]와 같이 개발한 [[컴팩트 디스크]](CD)를 공개하고 최초의 [[CD 플레이어]] 'CDP-101'을 출시하였다.파죽지세의 소니는 1987~88년 [[CBS 레코드|CBS 레코드 그룹]]을 매입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레코드회사가 되었다. 바로 뒤이은 [[1989년]]에 소니는 34억달러로 미국의 정신적 아이콘 중 하나인 [[컬럼비아 픽처스]] 영화사까지 인수하여 미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소니는 [[1992년]],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대통령 경제보좌관이었고, 이후 투자자문사인 블랙스톤 그룹(Blackstone Group)의 회장이었던 [[피터 피터슨]](Peter Peterson)을 사외이사로 임명했다.<ref name="장세진">{{서적 인용 |성= |이름= |저자링크= |저자=장세진 |제목= 삼성과 소니|연도=2008 |출판사=살림 Biz |위치= |id={{ISBN|978-89-522-0865-1}} }}</ref> {{Rp|203}} 이데이는 [[1997년]] 이사회를 개편하여 사외이사 중심의 서구식 지배구조로 바꾸었다. 그는 "매출액이 5조 6천억 엔이나 되는 방대한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사회는 그룹 전체를 시야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사회의 철저한 토론이 필수적이고 실질적 토론이 가능한 이사의 수는 10명이다"라고 밝혔다. 일본의 상법이 이사에게 업무 집행과 감독의 상반된 기능을 동시에 부과하였던 것에 반하여, 소니는 집행임원과 이사회의 이사를 분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기존에 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 등 총 38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소니 그룹의 이사회는 대표권을 갖는 부사장 이상 7명과 사외이사 3명의 총 10명으로 축소되었다. 소니는 피터 피터슨 외에도 [[사쿠라은행]]의 회장인 [[수에마쯔 켄니치]], 일본 골드만삭스의 [[이시하라 히데오]] 등을 사외이사로 임명했다.<ref name="장세진"/> {{Rp|305~306}}
히라이 가즈오 CEO의 구조조정으로 소니는 2017년기에 7조 2천억엔의 사상 최대 이익을 올렸다. 또한 소니 역사상 전대미문의 위기 중 하나로 꼽히는 2014년의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해킹 사건|소니픽쳐스 해킹 쇼크]]를 이겨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2018년 4월 1일부터 히라이 가즈오를 도우며 소니의 실적을 상승시킨 공로자로 인정되는 [[요시다 겐이치로]] 전 소니 CFO가 후임 CEO로 취임하였다.<ref>{{웹 인용|url=https://www.ft.com/content/359838ba-07df-11e8-9650-9c0ad2d7c5b5|제목=Sony names Kenichiro Yoshida as new chief|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2020-03-26}}</ref>
 
소니는, 40년 이상의 노하우로 쌓인 기술력과 스마트폰 멀티카메라 채용 증가세에 힘업어, [[2019년]]에 [[CMOS 이미지 센서]] 하나만으로 9년만에 세계 반도체 기업 매출순위 10위권 안인 9위에 안착한 것이 보도되었다. 그래서 소니는 쇠퇴 중인 일본 반도체 업계에서 유일하게 약진하는 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ref>{{웹 인용|url=https://www.yna.co.kr/view/AKR20191210136300003|제목="이미지센서 하나로…" 소니, 10년 만에 반도체 '톱10' 진입|성=최재서|날짜=2019-12-11|언어=ko|확인날짜=2020-03-2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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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6일에 소니는 이미징 제품, 가정용 가전 및 오디오, 모바일 제품을 아우르는 일렉트로닉스 프로덕츠 앤드 솔루젼스 ("EP&S") 분야를, 중간지주회사인 '[[소니전자]] 주식회사'(Sony Electronics Corporation)를 설립하여 그 아래에 통합할 것을 표명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sony.net/SonyInfo/News/Press/202003/20-021E/index.html|제목=Sony Electronics Corporation to be Established|언어=en|확인날짜=2020-03-26}}</ref>
 
== 슬로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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