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당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35번째 줄:
이 지역은 처음에는 십제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이라 부르고,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성벽은 쌓은 벽이 무너져 마치 흙과 돌을 합쳐서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벽 쪽에 약간 남아있다.
당성이 소재하는 남양지역은 지금은 화성시이지만 [[신라]] [[경덕왕|경덕대왕]]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통일신라]]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해서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당항성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명칭 변경 ==
1971년 사적 지정당시 문화재 명칭은 '''당성'''(唐城)이었으나, 지역명 병기 및
== 정비 계획 ==
56번째 줄:
* [http://tour.hscity.go.kr/History/historical3.jsp 당성] - 화성시 문화관광
{{신라}}
{{경기도의 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