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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인의를 중시한 나머지 앞에 보이는 이익을 놓치고 포기하는 것과 결단력이 부족하고 판단함에 있어 또한 부족한 인물로 묘사하는데 중국의 작가 [[루쉰]]은 이 때문에 유비의 진면모가 가려지고 이상한 인물로 그려졌다며 연의의 작가인 나관중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는 본디 중국의 영웅상이 남을 포용하고 인재를 적시에 쓰며 덕을 베푸는 인물이었기에 나관중이 주인공인 유비의 인물상을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 정사 삼국지의 평가
 
유비는 인덕을 갖추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성격을 지녔으나 [[배신]]을 굉장히 많이 해서 다른 군웅들에게는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혔다. [[순욱]]은 "유비는 남의 밑에 있을 성격이 아니다"라 평가했으며 [[전풍]]은 "유비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을 해롭게 하는 성격을 갖고 있어서 최대한 빨리 죽여야 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일찌기 유비는 조조의 천거를 받아 좌장군에 올랐으며 이게 유비에게 있어서는 현령, 현위같은 잡관직이 아닌 태어나서 처음으로 얻은 제대로 된 관직이었으나 바로 조조를 배신하고 조조 암살 계획에 동참하였다 적발되어 [[원소]]에게로 도망쳤으며 이후 [[문추]]의 부장으로 관도대전에 참전했으나 문추가 순욱의 계략에 걸려 전사하자 문추의 군대를 이끌고 원소의 진영으로 귀환하는 것이 아닌 여남으로 군무이탈을 감행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이후 [[유표]]에게 의탁하게 되어서도 유표의 가정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이후 [[유장]]이 [[장노]]를 견제하기 위해 유비를 성도로 불러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그런 유장을 배신하고 유장의 세력을 자신이 차지했다.
 
== 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