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 (오호 십육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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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370년]]에 [[전연]](前燕)이 멸망한 후 [[전진 (오호십육국)|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은 선비족 모용부를 대거 관중(關中)으로 이주시켰다. 이때 관중으로 이주한 모용홍·모용충 형제는 부견이 [[비수 대전]](淝水大戰)에서 패배한 후에 관중에서 선비족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도독섬서제군사·대장군·옹주목·제북왕(都督陝西諸軍事大将軍雍州牧濟北王)을 자칭하였다.([[384년]]) 모용홍은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 공격해 온 [[요장]](姚萇)을 격파하고 전진의 수도 장안(長安)을 함락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군하였다. [[385년]], 전진군을 격파하고 장안에 입성한 모용홍은 [[연흥 (서연)|연흥]](燕興)으로 개원하였다. 그러나 3개월 후3개월만에 불만을 품은 부하 고개(高蓋) 등에게 살해당하고 동생 모용충이 옹립되었다.
 
모용충은 장안을 근거로 국가를 발전시키려 하였으나 선비족의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다른 무장들은 이에 반발하여 [[386년]] 3월,2월 모용충이 피살되고 [[단수 (서연)|단수]](段随)가 옹립되었다. 단수는 40만 명의 선비족을 이끌고 장안을 떠났으나 곧 정변이 일어나 살해되었으며, 뒤를 이은 [[모용의]](慕容顗), [[모용요]](慕容瑤), [[모용충 (6대)|모용충]](慕容忠) 등도 계속된 정변으로 살해되었다. 386년 6월 모용충(慕容忠)이 살해되자 [[모용영]](慕容永)은 서연의 무리를 이끌고 [[후연]](後燕)의 [[모용수]](慕容垂)에게 항복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이르러 모용영은 장자(長子)에서 황위에 올라 다시 서연을 부활시켰다. 모용영의 서연은 병주(幷州) 남부 일대를 지배하였으나 세력을 크게 떨치지는 못하였으며, [[394년]]에 후연에 의해 멸망하였다.
 
== 역대 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