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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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신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루터가 말한 영광의 신학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 영광의 신학 ====
신학자 [[김영한 (교수)|김영한]]에 따르면 루터의 영광의 신학은 신학자가 하나님의 본질을 그의 사역에서 지각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보는 신학이라고 한다.<ref>[http://www.pck-good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9 김영한, 영광 신학의 설교와 십자가 신학의 설교, 크리스투데이, 2012.04.18]</ref> 영광의 신학은 출애굽기 33장이 보여주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신학이다. 영광의 신학은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하고자 하며 '''하나님의 보이는 본질을 통해서 그의 보이지 않는 본질의 지혜를 파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루터는 “만일 인간이[[인간]]이 하나님을 십자가의 낮아지심과 수치 속에서 인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그의 영광과 존엄성 속에서 인식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충분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다." 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 인식이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길이다. 영광의 신학은 “주여 아버지를 보여주소서”(요14:8) 라고 간청하는 빌립의 요구에 상응하는 신학이다. 그러나 예수는 빌립처럼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14;8)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을 창조사역으로부터 인식 - 하나님의 사역(Werke)으로부터 시도하는 하나님의 인식이다. 이 사역이란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이다. 하나님을 창조사역으로부터 인식하고자 하는 자연신학과 사변적 형이상학과 도덕적 인간의 행위 거룩성은 함께 속한다. 영광의 신학은 인간을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교만으로 이끌고 간다. 영광의 신학은 하나님을 인식하는데 “영광과 능력”(Glorie und Macht)을 기준으로 내세운다.
인간의 행위를 강조 - 루터는 중세 스콜라주의가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는 영광의 신학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은총]]을 강조하는 십자가 신학을 제시하고 있다. 중세의 스콜라주의는 인간의 도덕적 노력과 이성적 추론에 의하여 하나님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인간의 종교적 사색이나 행위의 의(work-righteousness)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직접 나아고자 하는 인본주의적 시도이다. 이것은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상승하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므로 이는 영광의 신학이다. 영광의 신학은 하나님을 공개적인 신적 능력, 지혜와 영광 속에서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고자 한다. 영광의 신학은 인간을 윤리적 실적으로 행위하는 자, 하나님 앞에 율법의 이행자로서 세운다. 그래서 도덕적 행위주의(moralischer Aktivismus)를 정당화 한다. 도덕주의와 합리주의에 기인&nbsp;- 세상의 지혜란 인간의 도덕성과 이성의 능력을 말하며, 여기서 인간은 자기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에게로 나가고자 한다. 이것은 영광의 신학이다. 영광의 신학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십자가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영광과 인정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러한 인간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에게 다가 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 있다.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린 약하고 무능한 자로 보기 때문이라고 신학자 [[김영한 (교수)|김영한]]은 말한다.
 
==== 십자가의 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