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넵스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68번째 줄:
|종교 = [[동방 정교회]]
}}
'''알렉산드르 야로슬라비치 네프스키'''({{llang|ru|Александр Ярославич Невский}}, [[1220년]] [[5월 30일]]? ~ [[1263년]] [[11월 14일]])는 [[킵차크 한국]] 시절의 대공으로 [[루시루스인|루스]]의 국민적 영웅이다.
 
== 생애 ==
74번째 줄:
 
== 정치적 업적 ==
유능한 정치가였고 [[1252년]]에 블라디미르 대공으로 취임했다. [[킵차크 한국]]과의 충돌을 조정했고, [[반몽골반란]](1259년)때에는 농민 반란을 진압했다. [[루스인|루스]] 북서부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했다. [[1240년]] [[네바 강 전투]]에서 적은 병력으로 [[스웨덴]]군을 격파했다는 전설이 유명하나, 비 [[루스인|루스]] 측 기록에서는 이러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실제 역사에서 스웨덴은 이 당시 내전 중이었기 때문에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부정한다. [[1242년]] [[페이푸스 호 전투]]에서 [[튜튼기사단]]에게 승리했다. 그는 침체기 루스의[[루스인|루스]]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숭배받았고 [[킵차크 한국]]의 [[칸]]에게서 공식적으로 [[노브고로드]]공의 지위를 받았고 훗날 전 [[루시루스인|루스]]의 대공이라는 칭호로 불리게 된다.
 
유리 브세볼로도비치가 바투의 유럽 침략군(Horde of Batey)의 일원으로 원정을 떠난 동안, 그의 동생 야로슬라브 브세볼로도비치가 [[블라디미르 대공국의대공국]]의 수장 자리를 맡았다. 야로슬라브는 8 살 된 큰 아들 알렉산데르 야로슬라비치를 칸한테 인질로 보냈다.
 
그는 일생동안 반카톨릭에 친몽골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국내의 정적들을 견제하는 데 몽골의 권위를 이용하기도 했다.
 
== 사후의 평가 ==
루스의[[루스인|루스]]의 국민적 영웅이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가 남긴 업적은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 국토를 잘 지켰다는 높은 공적 때문에 [[루스인|루스]] 민요에는 그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것이 많다. 또,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받아들었다.
 
[[러시아의 표트르 1세|표트르 1세]]는 네바 강의 옛 전쟁터 부근에 수도원을 세우고 그의 유골을 안장했다. 러시아 제국 정부는 넵스키 훈장을 제정하였다. [[1942년]] 소련 정부도 러시아 제국 정부의 전례에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