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기 그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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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회<sub>red-figured</sub> 양식 도기는 고졸기가 막을 내릴 무렵 아테나이에서 처음 고안되어 기원전 525년 경 아마 안도키데스 화가에 의하여 첫 선을 보인다.<ref>{{harvnb|Hurwit|2007|pp=278&ndash;9}}</ref> 적회 기술 역시 아테나이에서 백토 기술과 식스의 기술과 같은 타 기술의 발전이 있던 시기와 동일한 시기에 개발되었다.<ref>{{harvnb|Hurwit|2007|p=279}}</ref>
 
== 조각 ==
 
[[File:Ac.kleobisandbiton.jpg|thumb|upright|클레오비스와 비톤, 아르카이크기의 쿠로이(kouroi). c. 580&nbsp;BC.]]
아르카이크란, 그리스어의 '아르크' '아르카이오스', 즉 '처음' '오랜'을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하고, 고대 그리스인이 고전기 이전의 미술을 그렇게 부른 연유에 의한다. 오늘날에는 아르카이크 시대는 기원전 7세기 중엽 이후 그리스 각지에서 대리석으로 등신(等身), 혹은 거대한 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무렵부터, 기원전 5세기 초 무렵까지를 가리킨다. 기원전 10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 성립된 그리스의 폴리스는 기원전 7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서 뚜렷한 발전을 하여, 지중해 각지에는 식민도시 건설이 성행했다. 이 새로운 발전의 시기가 미술사상 아르카이크기이며, 그리스는 이 무렵 이집트나 동방과의 접촉으로 대리석으로 된 모뉴먼트한 조각을 제작하는 일을 배운 것이다.
 
최초의 유품(遺品)으로는 델로스섬에서 출토한 니칸드라의 봉납상(아테네 국립미술관), 사모스섬의 헤라 신전의 여신상(루브르 미술관) 등이 있다. 기원전 7세기 중엽의 것인 니칸드라의 봉납상은 아르카이크기의 가장 오랜 상으로서, 그 편평하고 소박한 형태는 크소아논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 상보다 조금 후기의 기원전 6세기에는, 그리스 각지에 오늘날 일반적으로 쿠로스 상이라고 불리는 나체의 청년상과 아름다운 옷을 입은 코레 상이 제작되는었데, 이 나체의 청년상과 옷을 입은 소녀상은 아르카이크기의 가장 중요한 상이다. 입상 이외의 유품으로 델포이의 나크소스인의 스핑크스, 델로스섬에서 출토된 니케, 또한 건축의 장식 조각으로서 코르프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박공 조각 등이 있다. 이들 상은 초기의 경직성(硬直性)과 기술적인 미숙성이 남아 있으나, 동시에 대담하고 또한 힘있는 표현에는 생생한 생명감이 넘친다.
 
중기 아르카이크의 상은 도서(島嶼)의 영향이 본토의 그리스 조각에 미친 시대의 산물이다. 이 기간의 상으로는 이오니아 양식의 특징인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표현이나 아몬드형(型)의 눈, 이른바 아르카이크 스마일의 입 모습 등이 나타나 많은 점에서 경직된 양식으로 변했다. 그래서 이들 양식은 중기 후반 무렵(전 550∼전 525년)에 이르러 본토의 양식이라고 할 만큼 새로운 양식이 생겨났다. 아크로폴리스의 ⟪모스코포로스⟫(송아지를 둘러멘 청년)나 델포이의 ⟪크로스 크로이소스⟫ 상 등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른바 ⟪아르카이크 스마일⟫(고식의 미소)은 이 시대상의 특징이지만, 이러한 표현은 상에 인간적인 표정을 담으려고 한 결과인 것 같다. 후기 아르카이크에 이르면 근육의 유기적 구조에 대한 관찰이 일층 세밀해져서 상은 더욱 자연스런 형태에 가까워진다. 생생하고 더욱 세련된 그 형태는 힘있는 생명의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아르카이크기의 남성 입상 조각의 유일한 과제였던 쿠로스 상은, 그 발전의 최후 단계에 도달했다.
 
== 각주 ==
{{각주}}
 
== 참고 문헌 ==
* {{글로벌}}
 
{{고대 그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