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 개의 출처 구조, 0 개의 링크를 깨진 것으로 표시) #IABot (v2.0
23번째 줄: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이후 공산당의 활동이 불법화되면서 더이상 풀리지 않게 되었다.<ref name="ReferenceA"/>
 
그러나 이 사건이 조작이라면 당시 조선공산당은 우연히 그 건물에 입주했는데, 들어가서 보니 거기에 지폐 인쇄시설이 있었을 뿐이고, 그것을 전혀 활용한 적도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런 기가 막힌 우연이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은 없다. 그 건물에 입주한 동기 자체가 그러한 시설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활용할 목적이었던 것이다.<ref>[http://db.history.go.kr/id/dh_001_1945_11_23_0120 조공 간판 近澤빌딩 본부건물에 내걸림] 자유신문 1945년 11월 24일 </ref> 사건 당시 조선공산당원으로 기관지 해방일보의 정치부 수석기자로 있었던 [[박갑동|박갑동(朴甲東, 1919~ )]]은 저서 《박헌영(朴憲永) - 그 일대기를 통한 현대사의 재조명》에서 당시 자금난에 시달려 활동비 조달에 애로를 겪던 조선공산당이 근택(近澤) 빌딩에 지폐 인쇄시설이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그 건물을 접수했다고 하였다.<ref>[http://www.nl.go.kr/nl/search/bookdetail/online.jsp?contents_id=CNTS-00047828057 《박헌영(朴憲永)- 그 일대기를 통한 현대사의 재조명》] {{웨이백|url=http://www.nl.go.kr/nl/search/bookdetail/online.jsp?contents_id=CNTS-00047828057 |date=20170427095744 }} (서울, 인간사, 1983) p.121 / [http://www.laborsbook.org/book.php?uid=147&no=2106 책 내용 소개]</ref>
 
당시 재판도 이례적으로 여러 차례 공판을 거쳤고, 심리도 충분히 했으므로 사건 자체가 조작이었을 가능성은 없다 이처럼 정판사 위조 지폐사건은 당시 급속도록 번져가던 조선공산당의 발목을 휘어잡은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할수 있다. 조선공산당(남로당) 박헌영의 지시로 시작된 위조지폐사건은 시장경제를 교한 혼란시키고 남로당의 활동비로 사용하였다.  1946년 9월6일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 공산당 간부 이강국 이주하가 체포령을 발부받게 됩니다. 같은날 미군정청은 3개 좌익신문 조선인민보, 중앙신문, 현대일보를 폐간시키고 신문사 간부들을 체포햇습니다. 이때 박헌영은 이북으로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지하로 잠입했다가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ref>[http://kor.theasian.asia/archives/143306 (민병돈 칼럼) 박헌영과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 The AsiaN August 24, 2015</ref> 말해지는 듯하나, 최신 연구에 따르면 당시 재판에 관해 "현재 남아있는 여러 자료를 비교 검토한 결과 정판사 ‘위폐’ 사건은 여러 가지 의혹이 많을 뿐 아니라 검사의 논고 및 재판부의 판결에서도 여러 가지 결정적인 모순점들이 발견되었"으며, "이 사건은 미군정이 조선공산당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며, 피고들은 최소한 검사 측의 공소 제기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무죄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니 참고할 수 있겠다.<ref>{{서적 인용|url=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93ef793efc1d6100ffe0bdc3ef48d419#redirect|제목=미군정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성=임|이름=성욱|날짜=2015. 2|출판사=학위논문(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 한국학과|확인날짜=}}</ref> 그러나 정판사 사건은 남로당의 위조지폐의 결정적인 증거가 있고 재판이 이루어 졌기에 논란과 의혹은 제기할수없다. 그래서 조선공산당은 남한의  공산화 공작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수있겠다.{{출처|날짜=2019-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