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모 푸치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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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초기 ===
푸치니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루카 (도시)|루카]]에서 5대를 걸쳐 음악적 배경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가계에서 태어났으나 소년 시절은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보인 일도 없었고 학교 성적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6세 때 아버지를 잃어 고생을 많이 하였다. 오르간과 피아노를 배워 오르간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돈을 벌기도 하였다. [[피사]]에서 본 [[베르디]]의 <아이다>에 감격하여 오페라 작곡가가 될 것을 결심하여 어머니와 집안의 도움을 받아 1880년 23세 때 바라던 밀라노 음악학원에 입학하여 [[폰키엘리]]와 그밖의 스승에게 배웠다. [[마스카니]]와 공동생활을 하면서 고학을 이어갔고 1883년 26세에 밀라노 음악원을 졸업하였다. 푸치니의 악재를 인정한 [[폰키엘리]]의 도움으로 졸업한 다음해 오페라 처녀작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 덕분에 [[밀라노]]의 저명한 음악출판사 [[리코르디]]와 계약이 성립되어 후에 [[리코르디]]는 푸치니 작품 보급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번째 오페라 작곡 중에 어머니와 동생을 사별하는 불행으로 겨우 완성된 작품이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상연되었지만 완전 실패로 끝났다. 푸치니가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결정적으로 확립한 것은 [[아베 프레보]]의 원작에 따른 <마농 레스코>이다. 1895년의 초연은 대성공이어서 이 한 작품으로 푸치니는 비약적인 진보를 보였다. 당시 그의 나이 38세로 일류 작곡가로서는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창작의 기본적인 스타일을 확립하고부터의 향상은 참으로 눈부신 것이었다. 이리하여 푸치니는 곧 명작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파일:Puccini7.jpg|섬네일|1908년의 푸치니]]
명작 시대는 1896년의 <라 보엠>에서 시작된다. [[파리 시|파리]]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들을 그린 이 오페라 속에 당시의 청중은 푸치니가 서민에 대해서 품고 있는 따뜻한 마음가짐을 알아차리고, 더욱이 그의 특유한 애수감을 띤 매력적인 선율미를 인정, 푸치니의 작품에 많은 기대를 갖게 되었다. 말하자면 [[베르디]]의 오페라가 정신적인 것을 청중들에게 요구하는 데 반해, 푸치니의 것은 한층 쉽게 작품 속으로 용해되는 오락적인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 [[베르디]]의 만년을 맞이하여 이탈리아의 청중은 푸치니에게서 [[베르디]]에 이어지는 오페라 명곡을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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