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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건(杜之建)은 만경(萬頃)을 본관(本貫)으로하는 두릉두씨2세조이다. 중국 송나라에서 중서사인(中書舍人)의 벼슬을 지냈다. 부친인 두경령(杜慶寧)은 송(宋)나라에서 병부상서를 지냈으며 고려 초기에 부친인 두경녕과 함께 송나라에서 고려국 만경현 (萬頃縣)에 표착하여 두릉두씨(杜陵杜氏)의 2세조가 되었다.
 
== 가계생애 ==
두지건(杜之建)은 두릉두씨2세조이다. 송(宋)나라에서 병부상서를 지낸 두경령(杜慶寧)의아들이다. 배(配)는 중국 송나라의 국부인(國夫人) 낙양홍씨(洛陽洪氏)이다.
 
두지건(杜之建)은 두릉두씨2세조로 중국 송나라에서 중서사인(中書舍人)의 벼슬을 지냈으며, 부친인 병부상서(兵部尙書) 두경녕(杜慶寧)과 함께 고려 목종조에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 덕종(德宗) 경강왕(敬康王) 때 부친의 작위를 세습받아 두릉군에 봉해졌다. 시조(始祖) 두경녕(杜慶寧)은 송(宋) 태종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두릉두씨세보(杜陵杜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송(宋) 진종의 왕위 계승 문제에 관해 상소를 올려 직간하다가 진종에게 미움을 받아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이에 아들인 중서사인(中書舍人) 두지건(杜之建)과 우습유(右拾遺) 두지방(杜之逢) 형제를 데리고 정처 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서 1004년(목종 7) 궁지현(宮池縣: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읍)에 표착하여 고려에 귀화하였다. 목종은 두경녕에게 우사관(右司官)의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을 식읍으로 하사한 후 두릉군(杜陵君)에 봉하였다. 궁지도는 당시 만경현(萬頃縣)에 속했던 섬이다. 시조 두경녕의 묘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석불산에 있다. 고려 문종 때 현내 주산(主山)에 두씨 2세조 두지건(杜之建)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혹은 두릉(杜陵)이라 부른 데서 후손들이 두릉을 본관으로 삼았다.
== 활동 사항 ==
두지건(杜之建)은 두릉두씨2세조로 중국 송나라에서 중서사인(中書舍人)의 벼슬을 지냈으며, 부친인 병부상서(兵部尙書) 두경녕(杜慶寧)과 함께 고려 목종조에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 덕종(德宗) 경강왕(敬康王) 때 부친의 작위를 세습받아 두릉군에 봉해졌다. 시조(始祖) 두경녕(杜慶寧)은 송(宋) 태종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두릉두씨세보(杜陵杜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송(宋) 진종의 왕위 계승 문제에 관해 상소를 올려 직간하다가 진종에게 미움을 받아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이에 아들인 중서사인(中書舍人) 두지건(杜之建)과 우습유(右拾遺) 두지방(杜之逢) 형제를 데리고 정처 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서 1004년(목종 7) 궁지현(宮池縣: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읍)에 표착하여 고려에 귀화하였다. 목종은 두경녕에게 우사관(右司官)의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을 식읍으로 하사한 후 두릉군(杜陵君)에 봉하였다. 궁지도는 당시 만경현(萬頃縣)에 속했던 섬이다. 시조 두경녕의 묘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석불산에 있다. 고려 문종 때 현내 주산(主山)에 두씨 2세조 두지건(杜之建)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혹은 두릉(杜陵)이라 부른 데서 후손들이 두릉을 본관으로 삼았다.
 
두지건(杜之建)의 이름을 떨친 후손으로는 고려시대에 서경유수 조위총난을 평정하고 삼한후벽상공신에 제수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중서령(中書令)에 이른 두경승장군, 고려 명종조 최충헌의 독재체제 수립과정에서 숙청된 두응룡(杜應龍)장군, 고려말기의 문신으로 정2품 평장사를 지내고 장암가(長巖歌)로 유명한 두영철(杜英哲)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13세손으로 도총관을 지낸 두양필(杜良弼), 14세손으로 진무일등공신이었던 두기문(杜起文) 등이 있다.
 
== 묘소 ==
 
== 향토문화유산 지정 ==
{{본문|만경 두지건 묘역}}
만경 두지건 묘역(萬頃 杜之建 墓域)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두릉(杜陵)에 있다. 2020년 2월 6일 [[김제시의 향토문화유산]](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
 
==만경읍 두릉군 두지건 묘역 향토문화유산 지정 언론기사==
김제시가 1월 30일 만경읍 만경리에 소재한 ‘두릉군 두지건(杜之健) 묘역’을 향토문화유산 기념물5호로 지정했다.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두지건 묘역’는 만경두씨 2세조인 두지건(杜之健, 975년~1048년)의 묘이다. 두지건 묘역은 만경현의 옛지명인 두산(杜山), 두릉(杜陵)으로 불리어지게 된 연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두지건은 중국 북송(北宋)에서 중서사인(中書舍人)의 벼슬을 지냈으며, 부친인 병부상서 두경녕(杜慶寧)과 함께 진종(眞宗)의 왕위계승을 반대하다가 부친이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자, 부임도중 풍랑을 만나 부친과 함께 서기 1004년(목종7) 고려국 궁지현(현 김제시 만경읍)에 표착하여 만경두씨의 2세조가 된 인물이다.
두지건은 고려덕종(敬康王) 때 부친(父親)의 작위(爵位)을 이어받아 두릉군이 되었다. 고려 문종2년 1048년 만경현내 주산(主山)에 두지건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두릉(杜陵)이라고 부른데서, 후손들이 두릉(杜陵)을 만경두씨(萬頃杜氏)의 본관으로 삼았다.
만경현의 별호(別號)가 두릉현(杜陵縣), 두산현(杜山縣)으로 불리었다는 사실은 『동국여지승람』 및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조연간에 발행된 『만경현읍지』, 『호남읍지』등의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 연합뉴스, 네이버뉴스등 15언론사
 
== 묘소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두릉(杜陵)에 있다.
 
== 평가 ==
두지건(杜之建)은 만경(萬頃)을 본관(本貫)으로하는 두릉두씨2세조이다. 만경 두지건 묘역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만경읍사무소(옛 만경관아터)와 만경 향교의 뒷편에 자리잡은 만경의 主山에 위치한 묘역으로, 두릉두씨의 시조 두경녕이 중국에서 벼슬을하다 고려국 궁지현(만경현)에 자리잡아 두릉군이라는 작위를 받았는데, 작위를 이어받은 두릉두씨의 2세조 두지건이 만경의 주산에 안장됨으로서, 만경일대가 두릉, 두산, 두릉산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또한 두지건 묘역과 마주보고 있는 만경능제 또한 원래의 명칭은 '두릉제'였으나 현재는 능제로 불리게 될 만큼 만경 지명의 역사와 함께하는 묘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