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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부터 [[캐나다 보수당|진보보수당]]에 가입했으나, 곧 탈당하고 [[개혁당 (캐나다)|개혁당]]으로 옮겼다. [[1988년]] [[캘거리]]에서 개혁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하였고, [[1993년]]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의회 진출 후 개혁당의 중심적 인물로 부상하였으나, [[1997년]] 선거에는 개혁당 지도부와의 마찰로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떠나 당시 여당이던 [[캐나다 자유당|자유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칼럼 등으로 유명해졌다. 그런 가운데 [[2000년]] 개혁당을 모체로 한 보수 성향의 캐나다동맹(Canadian Alliance, 약칭 CP)이 창당되었고, 그는 [[2002년]] 그 당수로 선출되었다. 또한 그 해에 다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2003년]], 캐나다동맹과 예전의 거대 보수정당이던 진보보수당이 합당하여, [[캐나다 보수당|보수당]]이 창당되면서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캐나다의 보수세력의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그는 그 당수에 선출되었다. 그 다음해 총선에서 보수당은 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었으나, 자유당 정권은 계속 유지되었다.
 
[[2005년]], 여당인 자유당의 부패 스캔들로 보수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폴 마틴]] 총리를 불신임하였으며, 이에 따라 [[2006년 1월]] 조기 총선이 실시되었다. 보수당은 총선에서 자유당을 꺾고 하원 제 1당이 되었으며, 다수 의석은 확보하지 못했으나 내각을 구성하여 그는 [[2006년]] [[2월 6일]] 제22대 총리가 되었다. [[2008년]] 조기 총선을 실시하여 보수당은 19석을 추가하여 계속 제 1당의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그는 총리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보수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한 야당은 경제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를 불신임하여 새로운 연정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이에 그는 [[미카엘 장]] 총독에게 의회 개원정지 명령을 받아내 자신의 총리 자리를 간신히 지켰다. 그러나 [[2011년 3월]], [[캐나다 자유당|자유당]], [[퀘벡블록]], [[신민주당]] 등 야 3당은 다시 그에 대한 불신임을 추진했다. 그가 이끄는 정부가 법인세 인하, 스텔스전투기 구매, 교도소 신축 등과 관련한 예산안을 충분히 공개하지 않았다며 ‘의회 모독’을 이유로 불신임안 표결을 가결하였다<ref>[http://news.donga.com/3/all/20110328/35932005/1 加의회 ‘하퍼총리 불신임’ 가결] [[동아일보]] [[2011년]] [[3월 28일]]</ref>.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5월 2일]] [[2011년 캐나다 연방 선거|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하였다. 이 선거에서 하퍼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승리를 거둬,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110503_0008095578|제목=加 총선, 하퍼 총리의 보수당 압승…과반 의석 차지|출판사=뉴시스|날짜=2011년 5월 3일|확인날짜=2012년 2월 15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1004075430/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110503_0008095578|보존날짜=2015년 10월 04일4일|url-status=dead}}</ref>2015년 연방 중간총선에서 자유당에 승리 를 거두어 보수당 정권을 모두 종결하여 총선에서 패배하여 총리직에 실패하였다.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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