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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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나라 정보
|나라이름= 선비
|현지이름= 선비
|다른표기=鮮卑
|존속기간_시작=기원전 209년
|존속기간_끝=9세기6세기
|p1=동호
|p2=흉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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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위치=
|공용어=
|종교= [[텡그리교]]
|정부형태= 제국
|지도자_칭호= '''대인'''<br />? ~ ?<br />? ~ 235년<br />220년 ~ 277년<br />285년 ~ 3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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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날짜 =
}}
[[파일:BeltBuckleXianbei3-4thcentury.jpg|섬네일|선비샨베이 벨트 버클 3-4세기]]
{{몽골의 역사}}
'''선비'''({{zh|c=鮮卑|p=Xiānbēi}}, [[기원전 1세기]] ~ [[6세기]])는 남만주와 몽골 초원의 동쪽인 북만주 지역에 기원을 두며 살던 [[튀르크족]] 또는 퉁구스족이라는 설이 있다.<ref>선비족은 몽골족의 조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몽골족의 직계 조상은 선비족이 아닌 [[실위]]이다.</ref> 흉노는 중앙아시아에서 나타난 코카서스 인종인 투르크계인데<ref>터키사, 2007. 9. 12., 이희수, 위키미디어 커먼즈</ref> 흉노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몽골 지역과 만주를 정복하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할 때 복속되어 있던 선비족에 10만명의 흉노 지배층을 잔류시켰다. 이 흉노 지배층에 의해 선비족이 투르크 혼혈화된 것이다.<ref>흉노 [匈奴] (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정수일</ref> 청대만주 사서의 기록에서는 선비족은 대선비산이라는 북만주의 산에 숨어 살았기 때문에 선비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고 하지만 이 설은 확실치 않으며 대선비산도 후대에 지어진 산의 이름이다.
{{만주의 역사}}
'''선비'''({{zh|c=鮮卑|p=Xiānbēi}}, [[기원전 1세기]] ~ [[6세기]])는 남만주와 몽골 초원의 동쪽인 북만주 흑룡강성 지역에 기원을 두며 살던 [[튀르크족]] 또는 퉁구스족이라는 설이 있다.<ref>선비족은 몽골족의 조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몽골족의 직계 조상은 선비족이 아닌 [[실위]]이다.</ref> 흉노는 중앙아시아에서 나타난 코카서스 인종인 투르크계인데<ref>터키사, 2007. 9. 12., 이희수, 위키미디어 커먼즈</ref> 흉노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몽골 지역과 만주를 정복하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할 때 복속되어 있던 선비족에 10만명의 흉노 지배층을 잔류시켰다. 이 흉노 지배층에 의해 선비족이 투르크 혼혈화된 것이다.<ref>흉노 [匈奴] (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정수일</ref> 청대만주 사서의 기록에서는 선비족은 대선비산이라는 북만주의 산에 숨어 살았기 때문에 선비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고 하지만 이 설은 확실치 않으며 대선비산도 후대에 지어진 산의 이름이다.
중국인이 쓴 사서의 기록에서는 선비족은 원래 흉노가 살던 곳보다 동남쪽인 남만주에 살며 흉노보다 강대했으나 흉노에 복속되어 있었고 흉노가 멸망하고 독립한 동호의 후예라고 한다. 동호는 퉁구스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설도 있다.<ref>{{저널 인용|last1=Chen|first1=Sanping|date=1996|title=A-Gan Revisited — The Tuoba's Cultural and Political Heritage|journal=Journal of Asian History|volume=30|issue=1|pages=46–78|jstor=41931010}}</ref>
선비족은 위진[[남북조시대]]에는 중국으로 남하하여 내몽고 지역에 정착하면서 중국인들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선비족이 정복왕조인 북조를 세우고 나서는 중국 대륙은 그야말로 중국인이 아닌 이민족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선비족들은 야욕을 가지고 중국인 한족들에게 항복하라는 서(書)를 보냈고 중국인들을 피지배민족으로 전락시켰다. 무천진 출신들인 선비족에게 대항하던 수많은 중국인들은 무참히 노예로 전락하였고 선비족을 떠받드는 선비화(鮮卑化)된 한족(漢族)들만이 관료로 임명되었다. 선비족은 [[중국]]에 [[북위 (북조)|북위]]와 북연을 세웠는데 선비족의 북위를 이어 북주, 북제는 남쪽의 중국인(漢族)들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대륙을 통일하였다. 북주의 선비족들은 복속된 남조의 한족(漢族)들에게 선비족의 성씨와 문화를 쓰기를 강요시켰다.<ref>{{저널 인용|last1=Chen|first1=Sanping|date=1996|title=A-Gan Revisited — The Tuoba's Cultural and Political Heritage|journal=Journal of Asian History|volume=30|issue=1|pages=46–78|jstor=4193101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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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한나라(漢族)의 내몽고 동부지역을 선비족이 점령했다. 본래 흉노에 예속된 민족이던 선비족은 흉노가 한나라와의 전쟁을 치른후 약해진 틈에 독립하여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그들은 [[동호족|동호]]({{lang|zh|東胡}})족의 북쪽 일파이며 [[동호족]]의 남쪽 일파는 [[오환|오환(烏桓 또는 烏丸)]]이다. 언어학적으로는 [[선비어]]가 퉁구스계라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퉁구스계 투르크계의 혼혈이라는 설도 있다.남만주에 살고 있던 퉁구스계가 강한 세력이 되어 흉노의 투르크계에 독립후 흉노 부족들을 정복하여 퉁구스-투르크계의 혼혈이라는 설도 있다.선비족의 흥성은 1세기 [[흉노족]]의 몰락과 때를 같이 한다. 87년과 93년에 선비족은 [[흉노족]]의 두 선우를 처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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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은 기원전 시기에는 흉노에 복속했었다. 그 후 흉노가 북과 남으로 분열하자 반독립상태가 되었다. 1세기가 되자 북흉노가 후한과의 항쟁을 계속하는 사이에 힘을 모아 북흉노를 대륙 북쪽 스텝지역으로부터 서쪽으로 내쫓았다. 2세기 반경 단석괴({{lang|zh|壇石槐}})가 등장하여 부족의 통합에 성공하여 강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단석괴의 사후 다시 분열되었다.<ref>{{서적 인용|title=China: Dawn of a Golden Age, 200-750 AD|url=https://books.google.com/books?id=JbdS-R3y72MC&pg=PA18#v=onepage&q=sima&f=false|year=2004|publisher=Metropolitan Museum of Art|isbn=978-1-58839-126-1|pages=18–}}</ref>
 
선비족은선비족이 중국과세운 만주의국가 징검다리북조는 지역인중국과 [[하북성]]에만주의 있는징검 중국인들을다리 정복하여지역인 화북을 재패하였으며 문화적으론 선비족보다중국 하급인 중국인의인의 언어와 문화를 지향하였다. 하지만 북주 때는 청나라의 여진족이 한족(漢族)들에게 수치스로운 변발을 강요했던 것처럼 선비족들도 피지배인 한족들에게 선비족의 풍습과 선비족의 성씨를 따를 것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선비족들이 중국이라는 국가에서 확실한한족과 함께 지배층이 되어가는 과정은 선비족이 북위를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북제, 북주, 수나라, 당나라까지 선비족의 무천진 8주국 관롱집단들이관롱집단들은 중국의 지배자로서 한족(漢族)들은 피지배민족으로서 계속 계승되었다.<ref name=dawn>Watt, James C.Y. China: Dawn of a Golden Age, 200-750 AD. Comp. An Jiayao, Angela F. Howard, Boris I. Marshak, Su Bai, and Zhao Feng.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4. Print.</ref> 북주의 지배층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관롱집단은 순수 선비족끼리만 결혼을 하였으며 이러한 풍습은 수나라의 양견과 당나라 이연까지 이어져 왔다.<ref>[[姚薇元]]『北朝胡姓考(修訂本)』([[中華書局]]、[[2007年]])P72-73は、楊氏(普六茹氏)は雁門茹氏、つまりは茹茹(蠕蠕、[[柔然]])の後裔とみる。</ref>
이때부터 중국인(漢族)들은 약화되기 시작하여 퉁그스계인 선비족들이 중국을 남쪽 끝 광둥성지역까지 유린하며 중국인(漢族)들은 정복하고 완전히 예속시키는 과정의 정복왕조가 시작되었다. 한(韓)민족인 고구려인과 백제인(요서 경락)들이 중국을 정복하기 시작했고 거란족, 갈족, 튀르크족 등등이 중국을 정복하는 등 중국 대륙은 중국인이 아닌 외국 민족들의 터전이 되었다. [[흉노]]의 지배를 받았던 [[갈족]]도 하북성, 산동성 등으로 남하하여 중국인들을 정복하고 예속시켰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KLNrqn4WLZYC&pg=PA181&dq=tang+taizong+xianbei+mother#v=onepage&q=%20taizong%20xianbei%20consort&f=false|title=Notable women of China: Shang dynasty to the early twentieth century|author=Barbara Bennett Peterson|editor=Barbara Bennett Peterson|year=2000|publisher=M.E. Sharpe|edition=illustrated|location=|page=181|isbn=978-0-7656-0504-7|accessdate=2010-06-28}}</ref>
 
선비족은 중국과 만주의 징검다리 지역인 [[하북성]]에 있는 중국인들을 정복하여 화북을 재패하였으며 문화적으론 선비족보다 하급인 중국인의 언어와 문화를 지향하였다. 하지만 북주 때는 청나라의 여진족이 한족(漢族)들에게 수치스로운 변발을 강요했던 것처럼 선비족들도 피지배인 한족들에게 선비족의 풍습과 선비족의 성씨를 따를 것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선비족들이 중국이라는 국가에서 확실한 지배층이 되어가는 과정은 선비족이 북위를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북제, 북주, 수나라, 당나라까지 선비족의 무천진 8주국 관롱집단들이 중국의 지배자로서 한족(漢族)들은 피지배민족으로서 계속 계승되었다.<ref name=dawn>Watt, James C.Y. China: Dawn of a Golden Age, 200-750 AD. Comp. An Jiayao, Angela F. Howard, Boris I. Marshak, Su Bai, and Zhao Feng.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4. Print.</ref> 북주의 지배층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관롱집단은 순수 선비족끼리만 결혼을 하였으며 이러한 풍습은 수나라의 양견과 당나라 이연까지 이어져 왔다.<ref>[[姚薇元]]『北朝胡姓考(修訂本)』([[中華書局]]、[[2007年]])P72-73は、楊氏(普六茹氏)は雁門茹氏、つまりは茹茹(蠕蠕、[[柔然]])の後裔とみる。</ref>
타카오 모리야스는 당나라를 탁발부 선비족 국가로 보는 학설은 일본 학계 그리고 중국, 구미 학계에서 인정되고 있으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였다.
<ref>[[森安孝夫]]は、「唐を[[拓跋部|拓跋]]国家とみなす学説は、日本の学界、さらに中国や欧米の学界では、どの程度認知されているのか?」という質問に対して、「唐の王族・李氏が拓跋出身であることを認めない者は、もはや世界中のどこにもいません」と回答している</ref><ref>[森安講義への質問に対する回答(全面的に補足)]
 
* [[탁발부]]({{lang|zh|拓跋部}}) ({{lang|zh|代}}, {{lang|zh|北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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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부족 선비족의 정체성이 강한 부족은 [[탁발부]], [[모용부]]이고, 단부, 우문부는 [[우환족|우환]]족에 가깝다. [[흘복부]], [[독발부]]은 본래 선비족에서 나왔다고 하며, [[남량]]이 망하고 북위에 귀속되었다.
 
이 외에 모용부로부터 나와 서천한 [[토욕혼]]({{lang|zh|吐谷渾}})도 선비계인데 현지의 강인({{lang|zh|羌人}})도 융합했다. 선비족 탁발부의 [[북위 (북조)|북위]]({{lang|zh|北魏}})는 439년에 화북을 통일하여 이 이후는 남북조 시대가 되었다. 선비족들은 그 후 중국인 한족(漢族)들이 세운 중국 남조를 정복하고 북주와 북제로 나뉘어졌다. 북주는 중국을 정복하여 통일시켰다.
 
수나라의 [[양견]]({{lang|zh|楊堅}})이 북주를 이어받는다. 수나라의 양견은 선비족 우문부가 세운 북주({{lang|zh|北周}})의 외척인 선비족이다. 그 이유는 북위 때부터 포함된 내몽골 지역인 관중과 농서지방의 무천진 군벌은 선비족이기 때문이다. 옛부터 내몽골에 포함되는 관중과 농서지방은 선비족들의 고향이며 북위 때부터 북주를 거쳐 계속 무천진 출신 선비족 8주국 관롱집단이 중국인들을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동일하게 선비족의 다얀씨(大野氏, 대야씨)는 [[북주]]({{lang|zh|北周}})의 귀족이며 선비족 8주국 관롱 집단의 출신의 당의 [[당 고조|이연]]({{lang|zh|李淵}})도 선비족이다. 선비족의 북위는 한자라는 문자를 가진 한족(漢族)의 풍습을 수용하는 정책으로 한족 썽씨를 쓰며 [[한족]] 문화를 사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당시 중국인 한족(漢族)의 최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복된 피지배족 한족(漢族)이 얻을수 있는 높은 직책들은 한정적이였다. 그리고 북주의 우문태 때는 몽골제국과 여진족의 청나라가 피지배민족인 한족(漢族)들에게 했던 정책들처럼 피지배민족인 중국 한족(漢族)들에게 선비족 풍습을 강요하고 선비족의 성씨를 쓰도록 강요했다.<ref name=dawn/><ref name="leaves">Laursen, Sarah. Leaves That Sway: Gold Xianbei Cap Ornaments from Northeast China. UPenn Repository. N.p., n.d. Web. 10 Dec. 2012. <http://repository.upenn.edu/cgi/viewcontent.cgi?article=1480&context=edissertations>.</ref><ref>http://repository.upenn.edu/cgi/viewcontent.cgi?article=1480&context=edissertations</ref>
 
선비족이 중국을 재패한 후 선비족이 있던 요서 지역의 민족은 당나라 후기에는 [[거란]]족이 출현했고 요나라를 세우며 중국인들을 지배한다. 동쪽에는 발해의 지배를 받던 여진족이 있었다. 발해가 거란족에 멸망하고 여진족이 다시 거란족을 정복하였다. 여진족은 금나라를 세워서 중국인들을 정복하고 북송을 멸망시켰다. 예전 요나라를 세웠던 거란인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 주위에 여진인을 배치하여 거란족은 와해되었다. 몽골 초원 동쪽과 북만주 지역에 있던 몽올실위였던 몽골족이 퉁그스계인 여진족의 금나라를 멸망시켰다. 금나라 멸망 이후 여진족은 [[해서 여진]], [[야인 여진]], [[건주 여진]]으로 나뉘어 졌다.<ref>Psarras, Sophia-Karin. "Han and Xiongnu: A Reexamination of Cultural and Political Relations (I)." Monumenta Serica. Vol. 51. N.p.: Monumenta Serica Institute, n.d. 55-236. Ser. 2003. J Stor. Web. <https://www.jstor.org/stable/40727370>.</ref>
 
== 언어 계통 ==
선비의 언어는 오환과 동일하다는 기록이 있다.<ref>三国志鮮卑伝王沈魏書其言語習俗與烏丸同後漢書鮮卑伝其言語習俗與烏桓同</ref> 선비의 언어계통에 대해선, 예전에는 튀르크계라는 설이 있었지만, 현재에는 선비(특히 탁발부)의 언어인 선비어는 몽골제어라는 설이 부각되고 있다.<ref>{{en|Pullyblank (1962)}}{{en|Ligeti (1970)}}기마민족사p9 주15p218주2》</ref> 그러나 선비의 부족에는 흉노에 참가했던 부족들도 있으며 여러 유목민족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흉노족의 전체의 언어를 특정하는 것은 어렵다.<ref>조미원 북조호성고1958年마장수 오환과선비1962年p31</ref> 즉 탁발의 언어를 고대 선비오환언어라고 대체로 특정할 수 있어도 이것을 엄밀히는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풍습 ==
선비는 오환과 동족이므로 풍습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결혼풍습은 오환과 다른데, 먼저 혼인 전에 머리를 깍고, 봄에 작락수(作楽水) 근처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술을 마시고 나서 결혼한다.<ref>후한서선비전其言語習俗與烏桓同。唯婚姻先髠頭,以季春月大會于饒樂水上,飲晏畢,然後配合</ref>
 
== 산업 ==
선비족이 사는 토지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은 중국의 동물들과 다르며 말, 산양, 녹단우가 존재하며 녹단우의 뿔은 활의 재료가 된다. 또한 담비, 원숭이, 다람쥐도 존재하며 그 모피는 부드럽고 고급이다. 주로 유목을 생업으로하며, 농업을 할 때도 있다.<ref>삼국지 선비전 왕침 위서其獸異於中國者野馬原羊甪端牛甪端牛角為弓世謂之甪端弓者也又有貂豽鼲子皮毛柔蠕故天下以為名裘</ref>
 
== 명칭 ==
선비라는 명칭은 중국측의 음차식 표현이지만 그 원음이 무엇이였는지, 선비족들은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아 불명확하다. 왕침의 위서에서는 "선비,오환의 부족은 산의 이름에서 나왔다"라고 주장하였다. 한서 흉노전에서는 서비(犀毗)는 혁대라는 뜻이며 이것을 선비라고 불렀다라고 쓰여 있다. 선비족이 착용하는 버클을 지칭하는 언어이다. 사기삭은(史記索隠)에서는 "선비의 혁대에 그려져 있는 신적인 동물의 이름을 선비라고 부른다" 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벨트 버클에 그려져 있는 토템을 칭하는 것이다. 동양사학자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는 고대 투르크-몽골어에서 혁대를 뜻하는 särbi와 만주어에서 재능이 있는 사람을 sabi가 "선비"라는 단어의 어원이라고 말했다. 또한 선비산이라는 산의 이름은 그 산이 선비족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선비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ref>内田1975 p7</ref>
 
선비족 탁발부의 [[북위 (북조)|북위]]({{lang|zh|北魏}})는 439년에 화북을 통일하여 이 이후는 남북조 시대가 되었다. 그 후 한족(漢族)들이 세운 중국 남조를 정복하고 북주와 북제로 나뉘어졌다. 그 후 수나라의 [[양견]]({{lang|zh|楊堅}})에 의하여 중국이 통일되었다. 선비족의 다얀씨(大野氏, 대야씨)는 [[북주]]({{lang|zh|北周}})의 귀족이며 호한이 융합된 8주국 관롱 집단의 출신의 당의 [[당 고조|이연]]({{lang|zh|李淵}})도 선비 출신이라는 설과 한족이라는 설이 상존한다.. 선비족의 북위는 한자라는 문자를 가진 한족의 풍습을 수용하는 정책으로 한족 썽씨를 쓰며 [[한족]] 문화를 사용하는 정책을 펼쳤다.하지만 북주의 우문태 때는 호화정책을 실행했으나 후지부지 되는듯 하였다.<ref name=dawn/><ref name="leaves">Laursen, Sarah. Leaves That Sway: Gold Xianbei Cap Ornaments from Northeast China. UPenn Repository. N.p., n.d. Web. 10 Dec. 2012. <http://repository.upenn.edu/cgi/viewcontent.cgi?article=1480&context=edissertations {{웨이백|url=http://repository.upenn.edu/cgi/viewcontent.cgi?article=1480&context=edissertations |date=20160303225424 }}>.</ref><ref>{{웹 인용 |url=http://repository.upenn.edu/cgi/viewcontent.cgi?article=1480&context=edissertations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9-06-0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3225424/http://repository.upenn.edu/cgi/viewcontent.cgi?article=1480&context=edissertations |보존날짜=2016-03-03 |url-status=dead }}</ref> 북조가 화북을 재패한 후 선비족이 있던 요서 지역의 민족은 당나라 후기에는 [[거란]]족이 출현했고 요나라를 세우며 지배한다. 동쪽에는 발해의 지배를 받던 여진족이 있었다. 발해가 거란족에 멸망하고 여진족이 다시 거란족을 정복하였다. 여진족은 금나라를 세워서 화북을 정복하고 북송을 멸망시켰다. 예전 요나라를 세웠던 거란인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 주위에 여진인을 배치하여 거란족은 와해되었다. 몽골 초원 동쪽과 북만주 지역에 있던 몽올실위였던 몽골족이 퉁그스계인 여진족의 금나라를 멸망시켰다. 금나라 멸망 이후 여진족은 [[해서 여진]], [[야인 여진]], [[건주 여진]]으로 나뉘어 졌다.<ref>Psarras, Sophia-Karin. "Han and Xiongnu: A Reexamination of Cultural and Political Relations (I)." Monumenta Serica. Vol. 51. N.p.: Monumenta Serica Institute, n.d. 55-236. Ser. 2003. J Stor. Web. <https://www.jstor.org/stable/40727370>.</ref>
== 선비족의 초기 칭호 대인(大人) ==
선비족의 부족장은 대인(大人) 이라고 불렸으나 선비족 초기에는 흉노처럼 부족 전체를 통일하는 군주 칭호는 존재하지 않았다. 탁발부가 나타나면서 가한이라는 칭호가 채용된다. 또한 중국을 정복하면서 선비족은 중국풍의 천왕,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된다.<ref>위서,진서</ref>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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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몽골의 역사]]
[[분류:만주의 역사]]
[[분류:중국의 역사]]
[[분류:튀르크족]]
[[분류:중국의 고대 민족]]
[[분류:몽골의 민족]]
[[분류:교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