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코흐: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22번째 줄:
'''하인리히 헤르만 로베르트 코흐'''({{llang|de|Robert Heinrich Hermann Koch}}, [[1843년]] [[12월 11일]] ~ [[1910년]] [[5월 27일]])는 [[독일]]의 의사, 미생물학자이다.
 
[[탄저병]](1877년), [[콜레라]](1885년)의 구체적인 원인물질이 병원균인 탄저균과 콜레라균임을 명확히 규명하여 ‘세균학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탄저균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1850년 카시미르 다벤느와 피에르 레예(1793-1867)이다. 콜레라균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이탈리아 해부학자 필리포 파치니(1854년)이다. 다만 이들은 세균을 발견했을뿐, 각 질병의 원인이 해당 세균으로 발생했음을 명확히 증명하지는 못했다. 해당질병의 원인이 각각의 병원균에 있음을 명쾌하게 증명해낸 사람은 코흐이다. 그러나 탄저균과 콜레라균을 발견한 사람을 코흐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단순한 발견보다는 그 발견의 영향력이나 이로인한 질병과 병원균간의 인과 관계를 명확히 증명하는것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ref> <ref>탄저병에 대한 코흐의 업적은 탄저병의 원인이 탄저균에 있음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해냈고 그 전파 경로를 밝혀낸것에 있다. 따라서 탄저균의 최초 발견자로 볼수는 없다는 견해가 비중이 있다 하겠다.</ref>1882년에 결핵균을 최초로 발견했으며 이 발견으로 인해 190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 생애 ==
[[하노버 왕국]] 클라우스탈에서 [[광산]] 기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괴팅겐 대학교]]에서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야코프 헨레]] 밑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866년 졸업했는데, 의대생 시절 [[루이 파스퇴르]]의 [[미생물]]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어 [[베를린 대학교]]에서 미생물연구를 하였다. [[의사]]자격시험에 합격, 의사가 된 코흐는 시골에서 근무하다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군의관으로 근무하였다. 종전후 볼슈타인(지금의 Wolsztyn)에서 지역 의사로 일하면서 [[탄저]]에 대해 연구, 1876년 [[브레슬라우 대학교]]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가축]] 실험으로 발표하였다. 코흐의 연구결과는 여러 나라에 알려져, [[미생물학]] 발전에 공헌하였다.
 
1881년 [[베를린 국립 위생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세균의 표본 고정법·염색법·현미경 촬영법을 창시하였다. 이듬해 1882년 3월 24일 결핵균을 발견했으며, [[공기 (기체)|공기]]를 통해 전염된다는 것도 알았다. 1883년에는 [[이집트]]를 거쳐 [[인도]]까지 여행하면서 콜레라 병원균을 발견했다. 1890년 결핵균에 대한 항원인 [[투베르쿨린]]을 발견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투베르쿨린이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자 학자로서 코흐의 명성은 일시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코흐는 그가 발견한 투베르쿨린의 개량을 위해 온힘을 쏟다가 그의 제자인 [[에밀 아돌프 폰 베링]]에게 학자로서의 입지마저 위협당하게 된다. 결국 베링은 디프테리아에 대한 혈청 면역 연구로 1901년 최초의 노벨 생리학상을 수여받게 되는데, 이는 코흐보다 4년 먼저의 수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베링의 수상은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것으로, 파상풍 혈청 면역 연구와 혐기성 세균의 순수 배양, 세균의 독소 생성 등 코흐의 또 다른 일본 출신 제자인 [[기타자토 시바사부로]]가 이뤄낸 연구 성과의 역할과 중요성이 수상자 결정에서 무시되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42번째 줄:
== 같이 보기 ==
* [[코흐의 공리]]
* [[:en:Filippo_Pacini|필리포 파치니]]
 
== 외부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