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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학교'''(University of London)는 [[영국]]의
University of London에 소속된 대학 및 연구기관들은 각자 완전히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으며, 제각기 특성화된 분야가 다르다. 영국 정부 차원의 유일한 공식적 대학별 연구평가 지표인 [https://www.ref.ac.uk/2014/ Research Assessment Exercise (RAE)]에 따르면, University of London의 모든 대학 및 연구기관들은 각자 특성화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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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학교의 역사는 1820년대와 30년대로 올라간다. 그 당시 [[잉글랜드]]에는 귀족과 상류층을 위한 대학 과정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교]]밖에 없었기 때문에 중산층과 비계급적 대학 설립을 추진하여 '인종과 종교, 정치적 입장을 초월해 모든 이에게 고등 교육을 제공한다'는 취지 아래 [[런던]]의 [[블룸스베리]]와 [[스트란드]] 지역에 각각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비종교적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University College London, 이하 UCL)]]과 [[영국 성공회]]를 바탕으로 하여 종교적인 면모가 강한 [[킹스 칼리지 런던]]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초기부터 잉글랜드 왕실은 학위 수여 권한을 두 대학에 주지 않고, 정부에서 관리하는 학위발급권한으로 두 대학을 조정하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두 대학 사이에 학위 수여 권한을 둘러싸고 서로 왕실의 허가증을 확보하려는 갈등이 생겨나자 이 같은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방편으로 두 대학은 마치 한 대학교의 단과대학들처럼 한 대학교의 학위를 받는 내용을 골자로 [[1836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UCL)의 주최로 학위를 관리하는 제3의 기구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런던 대학교를 태동시켰다. 이후 인도 및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런던 대학교를 모델로 대학 체제를 세웠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 아래 런던
등록금 상한선 등 대학본부 ([[Senate House]])의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은 2005년 12월 9일 탈퇴를 선언했고 2006년 10월에 런던 대학교와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이로써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이 생긴 지 100주년이 되는 2007년 7월부터는 더 이상 런던 대학교 소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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