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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연맹체의 [[창원군|탁순국]]([[300년]]? ~ [[530년]]?)을 거쳐 [[676년]] [[신라 문무왕]] 때에 굴자군(屈自郡)이 설치되고, [[757년]] [[경덕왕]] 때 굴자군을 의안군(義安郡)으로 고쳤다. 지금의 마산 지역인 [[회원현]](會原縣)은 본래 골포(骨浦)라 불렸는데, [[신라 경덕왕]] 때에 합포(合浦)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인 [[1018년]] [[고려 현종|현종]] 9년에 두 현을 모두 [[김해|금주]](金州) 관하에 붙였다가 뒤에 각기 감무(監務)를 두었고, [[1282년]] [[충렬왕]] 8년 의안을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를 [[회원현]](會原縣)으로 승격하여 현령을 파견하였다.
 
=== 회원이 의창과 합쳐져 창원으로 ===
[[조선 태종]] 때인 [[1408년]]에 의창현과 회원현이 합병하여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면서 '''창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김응서]]와 관군, 백성들이 한 명도 항복하지 않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도호부로 승격되었고, [[칠원군]], [[진해군]](현 [[마산합포구]] 진동면·진북면·진전면 일대)등과 합쳐졌다가 분리되는 등의 변화를 겪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마산포구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활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