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링크를 추가 태그: m 모바일 앱 안드로이드 앱 편집 |
잔글 →교황청과의 대립: 장난쳐놓은 것 정정 |
||
132번째 줄:
[[1615년]], 갈릴레오는 [[검사성성]]에 고발되었고 이것을 알자 자신과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변론하기 위해 로마를 방문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방문은 별 소용이 없었다. [[1616년]],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로마 교황청]]에 의해 지정된 [[금서]] 목록에 올랐고,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유일한 진리로서 지지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리하여 고향인 [[피렌체]]에서 지내던 [[1623년]], 갈릴레오와 친분이 두터웠던 [[마페오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우르바노 8세]]로 즉위하였다. 이듬해, 갈릴레오는 다시 로마를 방문하여 [[교황]]의 환대를 받았고, 교황과의 변함없는 우정을 확인한 그는 자신의 이론을 추론 수준에서라면 발표해도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두 가지 주요 세계관에 관한 대화》의 원고를 완성하였고, [[1630년]]에 이 책의 출간 허가를 받기 위해 다시 로마를 방문한다. 이 책은 우여곡절은 겪은 끝에 [[1632년]] [[피렌체]]에서 발간되었는데, 곧이어 갈릴레오 반대 세력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다. 우르바노 8세마저 이 책의 발간을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했다.
결국 우르바노 8세는 이 책의 배포를 금지하고,
윌리엄 쉬어/마리아노 아르티가스, 《갈릴레오의 진실》, 동아시아, 2006, 13~14쪽.</ref> 종교재판이 끝나고 재판정을 나서면서 갈릴레오가 “그래도
=== 로마 교황청의 사후 평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