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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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 개별 교회 ===
로마 가톨릭교회 안에는 교리 문제에 있어서 교황의 최고 권위를 수용하는 23개의 자치 총대주교좌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다.<ref name="Gunton"/><ref>{{웹 인용|url=http://www.vatican.va/archive/hist_councils/ii_vatican_council/documents/vat-ii_decree_19641121_orientalium-ecclesiarum_en.html |title=''Orientalium Ecclesiarum'' |work=[[제2차 바티칸 공의회]] |accessdate=2011년 4월 30일 |at=2}}</ref> 이들 교회들을 아울러 ‘자치‘[[자치 교회’교회]]’(sui iuris)라고 부른다. 이 교회들은 라틴 교회와 다른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이들의 전례 양식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통상 각 동방 자치 교회들은 총대주교 또는 대주교를 주축으로<ref name=CCEO56>[http://www.intratext.com/IXT/ENG1199/_P1K.HTM "''CCEO'', Canon 56."]. Intratext.com (영어 번역). 1990.</ref> 고유한 교회 조직 구성이나 전례 양식, 전례력, 기타 영성을 갖고 있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개별 교회는 [[라틴 교회]]이며, 신자 수가 대략 12억 명 이상으로 보고되고 있다. 본래 라틴 교회는 남유럽과 북아프리카에 걸쳐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서유럽과 중유럽, 북유럽까지 교세가 확장되어 오늘날에는 세계의 대부분에 널리 퍼져 있다. 라틴 교회는 스스로 [[서방 기독교|서방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교세가 큰 교회로 자부하고 있으며,<ref name="west_christ">[http://www.philtar.ac.uk/encyclopedia/christ/west/westessay.html "General Essay on Western Christianity"], ''Overview of World Religions''. Division of Religion and Philosophy, University of Cumbria. 1998/9 ELMAR Project. Accessed 1 April 2012.</ref> 여러 유럽 국가의 사상 및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위 [[종교개혁]] 이후 발생한 여러 [[개신교]] 교파들도 이러한 라틴 교회의 많은 유산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ref name="west_chri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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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계승하여 [[세계 공의회]]와 [[교황 교서]]의 판결에 따른 정통 신앙과 [[이단]]의 구분, 여러 신학자에 의한 신학적 토론을 두루 반영하여 수세기에 걸쳐 발전해왔다. 가톨릭교회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도록 위임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의 특별한 도움으로 어떤 종류의 교리적 오류나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고 믿고 있다([[교회의 무류성]]).<ref>{{웹 인용|url=http://info.catholic.or.kr/doctrine/view.asp?seq=6476&level1=1&level2=2&level3=3&level4=9&level5=4&level6=1&level7=3&lang=ko|work=가톨릭교회 교리서|publisher=바티칸|accessdate=2011년 4월 28일|title=가르치는 임무|quote=889.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이 전해 준 순수한 신앙으로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 교회를 당신의 무류성에 참여시키고자 하셨다.}}</ref><ref>{{웹 인용|last=제2차 바티칸 공의회|url=http://info.catholic.or.kr/concil/view.asp?kid=2&seq=2537&level1=3&level2=0&level3=3&level4=0&level5=0&level6=8&level7=&lang=ko|work=인류의 빛(Lumen Gentium)|publisher=Vatican|accessdate=2010년 7월 24일|title=제3장 25항|quote=성령의 빛으로 밝혀 주며&nbsp;... 자기 양 떼를 위협하는 오류를 경계하여 막는다.}}</ref>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성경]]과 [[성전 (신학)|성전]]을 이루어진 공적 계시를 근거로 삼고 있으며, 그 내용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모든 가톨릭 신자는 이 교도권에 따른 성경과 성전 해석에 따라야 한다.<ref>{{웹 인용|last=제2차 바티칸 공의회|url=http://info.catholic.or.kr/concil/view.asp?kid=3&seq=2762&level1=4&level2=0&level3=3&level4=0&level5=0&level6=4&level7=&lang=ko|work=하느님의 말씀(Dei Verbum)|publisher=바티칸|accessdate=2010년 7월 24일|title=성전과 성경의 온 교회와 교도직에 대한 관계|quote=기록된 하느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 이 권한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해석한다. 그리고 교도권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얻어 낸다.}}</ref> 가톨릭교회의 성경 권수는 [[구약성경]] 46권과 [[신약성경]] 27권을 합쳐 총 73권이다. 신약성경의 목록에 대해서는 동서방 교회 모두 이견 없이 받아들였지만, 몇몇 개신교도들은 이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ref group="note">개신교 지도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정경]]에서 개신교의 신조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오직 믿음(sola fide) 사상과 부분적으로 대치되는 내용이 있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을 제외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루터는 자신이 번역한 독일어 성경의 맨 마지막에 이들 책들을 수록하는 선에서 타협하였다. 루터는 또한 [[제2경전]]을 [[외경]]으로 분류하여 자신이 번역한 독일어 성경에서 제외하였다.<!-- copied from: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Biblical_canon&oldid=615830917--></ref> 구약성경의 경우, [[제2경전]]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개신교에서는 제2경전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지만, 동방 정교회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일부로 인정하고 포함시켰다.<ref>[http://books.google.com/books?id=CkoaDqWaB2YC&pg=PA146&dq=Bowley+%22clarify+what%22&hl=en&sa=X&ei=zaedU97UCeWO7AaO8YDoBw&ved=0CB0Q6AEwAA#v=onepage&q=Bowley%20%22clarify%20what%22&f=false James E. Bowley (editor), ''Living Traditions of the Bible'' (Chalice Press 1999 {{ISBN|978-0-8272-2159-8}}][[국제 표준 도서 번호|ISBN]]&nbsp;[[특수:책찾기/978-0-8272-2159-8|978-0-8272-2159-8]][[국제 표준 도서 번호|ISBN]]&nbsp;[[특수:책찾기/978-0-8272-2159-8|978-0-8272-2159-8]]<span>), pp. 146–147</span></ref> 성전은 전승 또는 전통이라고도 부르며, 사도 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온 교회의 기도와 가르침, 전례 예식, 권위 있는 저술 등을 가리킨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경과 성전을 모두 통틀어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성경과 성전이 다양하게 해석되어 큰 혼란이 일어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바로 교황과 교황과 온전히 일치하여 친교를 이루는 주교단으로 구성된 교회의 가르침이다(교도권).<ref name="Schreck30">Schreck, p. 30</ref>
 
로마 가톨릭 교리를 권위 있게 정돈하여 요약한 것이 성좌에서 출판한 《[[가톨릭교회 교리서]]》이다.<ref name="cat">Marthaler, preface</ref><ref>{{웹 인용|last=John Paul II|first=Pope|title=Laetamur Magnopere|publisher=Vatican|year=1997|url=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post_letters/documents/hf_jp-ii_apl_15081997_laetamur_en.html|accessdate=2008년 3월 9일}}</ref>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교리 부문은 [[사도신경]]의 각 조목을 체계화한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아타나시오 신경]] 또한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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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비오 9세]]는 1851년부터 1853년까지 주교들의 자문을 구한 후, 1854년 대다수 주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교의]]로 공식 선언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alpha/data/aud19930324en.html |title=John Paul II, General Audience, March 24, 1993 |publisher=Vatican.va |date=1993년 3월 24일 |accessdate=2011년 6월 30일}}</ref>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 무류성]]의 교리적 정의를 내렸다.<ref name="Leith">Leith, ''Creeds of the Churches'' (1963), p. 143</ref><ref name="Duffy232">Duffy, ''Saints and Sinners'' (1997), p. 232</ref> [[교황 무류성]]과 기타 문제들에 있어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반발하여 독립한 무리는 스스로 [[구 가톨릭교회]]라고 자처하고 있다.<ref name="Fahlbusch">Fahlbusch, ''The Encyclopedia of Christianity'' (2001), p. 729</ref>
 
1860년대 교황령을 포함한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일어난 결과, 교황 비오 9세 치세에 [[이탈리아 왕국]]이 로마를 점령하면서 교황령은 사라지게 되었고, 천년 간 이어져오던 교황의 세속 권력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교황 보장법]]을 제정하여 교황에게 연금을 제공하고, 일신상 불가침권과 영적 기능의 자유로운 행사를 보장하겠다고 교황에게 제의하였으나 교황은 이 제의를 일축하였고, 바티칸에 들어앉아 스스로 ‘[[바티칸의 포로]]’로 자처하였다.<ref>[http://books.google.com/books?id=y_4eaFsFdI4C&pg=PT155&dq=Kertzer+%22papal+prisoner%22&hl=en&sa=X&ei=A1scUp2fBomp7Ab67IHYDQ&redir_esc=y#v=onepage&q=Kertzer%20%22papal%20prisoner%22&f=false David I. Kertzer, ''Prisoner of the Vatican'' (Houghton Mifflin Harcourt 2006 {{ISBN|978-0-54734716-5}}][[국제 표준 도서 번호|ISBN]]&nbsp;[[특수:책찾기/978-0-54734716-5|978-0-54734716-5]][[국제 표준 도서 번호|ISBN]]&nbsp;[[특수:책찾기/978-0-54734716-5|978-0-54734716-5]]<span>)</span></ref> 이후 영토 분쟁으로 인한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 간의 교착 상태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1929년 파시스트 [[무솔리니]]정부와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해 해결되었다. 이 조약에서 교황청은 과거 교황령이었던 지역에 대한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인정하였으며, 이탈리아는 그 대가로 바티칸을 독립국가로 따로 분류하여 그곳에 대한 교황의 통치권을 인정하였다. 이리하여 [[바티칸 시국]]이 세워지게 되었다.
=== 20세기 ===
20세기는 정치적으로 근본주의적이고 [[반성직자주의]]적 성향의 정부들이 증가한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1926년 멕시코에서 정교 분리를 내세운 칼레스법이 통과되어, 3천 명 이상의 사제들이 추방당하거나 살해당했으며,<ref name="Scheina">Scheina, p. 33.</ref> 성당들은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되었고, 전례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며, 수녀들은 강간당하고 수감당한 사제들은 총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ref name="Chadwick264"/> 결국 [[크리스테로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ref name="Chadwick264">Chadwick, Owen, pp. 264–265</ref> 러시아에서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수립된 [[소비에트 연방]] 정부의 주도로 1930년대까지 현지에 있는 가톨릭교회가 박해당하였다.<ref>Riasanovsky 617</ref>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 평신도들이 처형이나 유배형에 처해졌으며, 교회 재산은 압류당했으며, 모든 성당이 사실상 문을 닫게 되었다.<ref name="Riasanovsky 634">Riasanovsky 634</ref>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전개된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가톨릭교회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인민 전선 (스페인)|인민 전선]] 정부의 교회에 대한 [[적색 테러 (스페인)|적색 테러]]<ref>Alonso, pp. 395–396</ref>에 대항하기 위해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스트들과 동맹을 맺었다.<ref>Payne, p. 13</ref> [[교황 비오 11세]]는 이들 세 나라를 ‘끔찍한 삼위일체’로 언급하면서 결국 몰락할 것이며,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이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며 방관하는 것은 사실상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크게 질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