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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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최초로 도달한 서구문명(스페인)의 사람은 [[1521년]]에 필리핀 섬에 도착한 [[페르디난드 마젤란]]과 그와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입도는 필리핀의 민족들과 섬을 지배하겠다는 목적을 지닌 류의 방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착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마젤란은 곧 생각을 바꾸어 갑옷과 창, [[화승총]], [[대포]] 등의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필리핀의 여러 인사들을 겁박하며 스페인 왕에 복속하도록 강요하면서 [[조공]]과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세부 섬의 왕이었던 [[라자 후마본]]은 처음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필리핀인으로 알려졌으며, 스페인은 그를 위시하여 다른 부족국가들의 왕에게 스페인에 대한 복종과 기독교에 귀의할 것을 요구하였다.<ref name="lac47">{{Harvnb|Lacsamana|1990|p=47}}</ref> 그러나 이슬람의 문화가 강하던 필리핀 남부의 부족장 [[라푸라푸]]는 이를 거절했다. 마젤란은 격노하여 [[1521년]] [[4월 27일]], 라푸라푸와 그 부족을 토벌하기 위해 [[막탄 섬]]에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라푸라푸 군은 스페인 병사의 상체와 머리는 갑옷과 투구로 단단히 무장을 한 것에 비하여 다리는 방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는 교묘한 전술로 마젤란 군을 물리쳤고 마침내 마젤란도 살해했다. 때문에 [[막탄 전투]]에서 주장을 잃은 마젤란의 부하들은 후퇴를 해야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스페인 본국은 여러 탐사대를 필리핀 제도에 파견하였다.
레가스피는 마닐라에 요새를 건설하였고, 톤도 왕국의 라자(왕)인 [[라칸 둘라]]와의 우호관계를 뒤집었다. 그러나 마닐라의 전 통치자 [[라자 술라이만]]은 레가스피에 굴복하기를 거부했지만, 라칸둘라의 또는 북쪽의 팜팡안이나 팡가시안 지역 세력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술라이만과 필리핀 전사들이 스페인 제국 병사들을 방쿠사이 전투에서 습격했을 때, 결국 그는 패배했고 죽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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