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타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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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번'''({{llang|ja|新発田藩|시바타한}})은 [[일본]] [[에도 시대]] [[에치고 국]] 간바라 군({{lang|ja|蒲原郡}}) 시바타를 중심으로 지금의 가에쓰 지방({{lang|ja|下越地方}})의 일부를 지배했던 [[일본의 번|번]]이다. 번청은 지금의 [[니가타현]] [[시바타 시시바타시]]에 있는 [[시바타 성]]이다. 번주는 미조구치 가문({{lang|ja|溝口氏}})으로, 그 가격({{lang|ja|家格}})은 [[도자마 다이묘]]이다. [[고쿠다카]]는 6만 석이었으나, 후에 10만 석 격으로 수정되었다.
 
== 번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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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카쓰의 아들 [[미조구치 노부카쓰]]는 동생 [[미조구치 요시카쓰]]에게 영지 1만 석을 분할하여 주었으므로, 총 [[고쿠다카]]는 5만 석이 되었다. 게다가 노부카쓰의 아들 [[미조구치 노부나오]]는 세 명의 동생에게 영지를 각각 나누어 주었다.
 
번의 영역은 지금의 [[시바타 시시바타시]] 영역에 지금의 [[니가타 시니가타시]] 동부, [[아가노 시아가노시]], [[가모 시가모시]], [[미나미칸바라 군미나미칸바라군]]까지 포함하는 광대한 것이었다. 그 영역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간바라 평야({{lang|ja|蒲原平野}})는 아가노 강, [[시나노 강]] 하류 유역에 펼쳐진 낮은 습지대로, 그 상태 그대로는 농경에 적합하지 않았다. 시바타 번과 영지의 백성들은 대대로 간척과 치수에 공을 들여 개간을 진척시켰다. 그 결과 이 지역은 곡창지대가 되어갔고, 수확량도 고쿠다카 수치를 훨씬 웃돌아 실제 고쿠다카가 40만 석이었다는 설도 있다.
 
4대 번주 [[미조구치 시게카쓰]]는 [[에도]]로부터 정원사 [[아가타 소치]]를 초청하여 교토 풍 회유식 정원 [[세이스이엔]]({{lang|ja|清水園}})을 만들어, 당시 번영한 문화를 상징했다. 8대 번주 [[미조구치 나오야스]]는 [[번교]] 도학당({{lang|ja|道学堂}})을 만들어 학문을 장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