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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의 3세손 청주총관 소복서(蘇福瑞)로부터 4세손 한주총관 소억자(蘇億慈), 5세손 상주총관 소후준(蘇後俊), 6세손 웅주도독 소검백(蘇劍白), 7세손 청주도독 소상영(蘇尙榮), 8세손 청주도독 소목(蘇穆), 9세손 웅주도독 소은(蘇恩), 10세손 강주도독 소송(蘇淞), 11세손 하동태수 소격달(蘇格達)에 이르기까지 9대에 걸쳐 중흥을 이루었다고 한다.
 
소경의 15세손인 소계령이 [[고려]]조에서 현달하여 형부원외랑, 신호위상장군(上將軍), 이부상서 등을 지내고, 그 딸이 헌종(獻宗)의 비가 되어 [[회순왕후]](懷純王后)에 책봉됨으로써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한편, 1935년 간행된 《진주소씨족보》나 《씨족원류》에 따르면, 시조는 고려 말기의 '''소희철'''(蘇希哲)이다. 소희철(蘇希哲)은 상호군(上護軍)이었으며, 소희철의 후손 소세량(蘇世良)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대사성(大司成)이었다. 소세량의 아우 [[소세양]](蘇世讓)도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찬성(贊成)과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고 문정(文靖)이란 시호를 받았다.<ref>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114_580_0218}} </ref>
 
진주소씨는 시조를 〈경자보〉를 수간할 때까지는 문공공(文恭公) 소희철(蘇希哲)로 삼아왔으나, [[1951년]] 발견된 양곡공(陽谷公) 후손 소창엽(蘇昌燁)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 〈부소보(扶蘇譜)〉와 [[1975년]] 발견된 소종만(蘇鐘萬) 소장인 〈소치선가승(蘇致善家乘)〉에 따라 문헌사적과 분묘소재 등의 고증이 이루어져서 오늘날과 같이 상대등공 소경(蘇慶)을 시조로 바로잡게 되었음이 〈신유보〉에 나타나 있다.<ref> [http://www.djjunggu.go.kr/html/hyo/museum/museum_040401_2.html?mng_no=535 효월드 족보 박물관 - 소(蘇)],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 《한국인의 역사》 </ref>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