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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중국]] 전국 시대의 노래인 초혼부(招魂賦)에 “거여(粔籹)와 밀이(蜜餌)에 장황(餦餭)도 있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후한의 왕일(王逸)은 ‘거여’를 쌀가루를 꿀에 섞어 구운 것으로, ‘밀이’는 기장쌀을 꿀에 섞어 구운 것으로, ‘장황’을 엿[(])으로 보았다. 명나라의 가산(可山) 임홍(林洪)은 ‘거여’를 밀면(蜜麪)을 말린 간로병(間爐餠)으로, ‘밀이’는 밀면보다 윤기가 더 있는 떡으로, ‘장황’은 한식에 먹는 한구(寒具)로 보았다. 이에 대해 [[이익 (1681년)|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거여’는 밀면을 기름에 튀긴 후에 말린 박계(朴桂)와, ‘밀이’는 거여와 같은 방식으로 만든 후에 엿과 꿀을 덧바른 약과와 유사한 것으로 보았다.<ref name="거여밀이">{{웹 인용 |url=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68A_0050_010_1210_2002_002_XML |제목=성호사설 제4권 > 만물문(萬物門) > 거여 밀이(粔籹蜜餌) |저자=[[이익 (1681년)|이익]] |웹사이트=성호사설 |확인날짜=2017-12-25 }}</ref> 약과는 이것의 전래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에는 고기와 생선을 올리지 않는 불교의 제례에서 약과가 그 대체품으로 이용되었으며, 약과를 과일뿐만 아니라 짐승의 모양을 본따 만들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윤덕노의 음식이야기]<35>약과 |url=http://news.donga.com/3/all/20110513/37187627/1 |출판사=동아일보 |저자=윤덕노 |날짜=2011-05-13 |확인날짜=2017-12-25 }}</ref><ref>{{뉴스 인용 |제목=잔치나 상례 때 빠지지 않는 '약과'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79&aid=0002379044 |출판사=노컷뉴스 |저자=안초롱 |날짜=2012-07-24 |확인날짜=2017-12-25 }}</ref> 이에 관하여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밝히기를, ‘약’은 ‘꿀’을 뜻하고, ‘과’는 과일 모양을 본땄던 원래의 약과는 높이 쌓을 수가 없어 네모꼴[方形]로 바꾸었는데 이름만 남아 전해진 것이라고 하였다.<ref name="아언각비">{{웹 인용 |url=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597A_0240_040_0430_2004_A281_XML |제목=여유당전서 > 第一集雜纂集第二十四卷○雅言覺非 > 卷三 > 藥果 a281_529a |저자=[[정약용]] |웹사이트=아언각비 |확인날짜=2017-12-25 }}</ref> 약과의 다른 이름인 조과(造果)에 대하여 《성호사설》에는, 처음에는 약과를 과일 모양을 본따 만들었으나 제사상에 올리기 어려우므로 넓적하게 끊어 자르기 시작하였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고 적혀 있다.<ref name="거여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