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노동운동: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20번째 줄:
 
=== 노동 운동의 시대 ===
이후 1970년대에 들어 노동운동은 여성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실천했다. 이는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자들의 많은 수(역사학연구소에 따르면 1970년 노동자의 90%가 여성노동자였으며, [[경공업]]에 종사했다.)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건 개선 및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노동조합 결성과 노동법 교육을 하였다. 권위적인 [[군부 독재|군사독재]]정권 및 가부장주의에 젖어 있던 자본가들에게 민주노조 운동은 '아버지'같은 사장에게 대드는 것으로 보여져 탄압을 받았다. 군사독재정권도 노동조합이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느니, 사회적 질병이라느니, 빨갱이라느니 하는 악선전을 해면서 민주노조 운동을 억압하였다. 그럼에도 여성노동자들은 굴하지 않고 노동운동을 하여 자신들의 처지를 바꾸어갔다. [[저임금]]은 [[생활임금]]으로, 열악한 급식은 먹을만한 급식으로 바뀌어갔고, 환풍기를 설치하여 경공업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먼지를 마시지 않게 했다. 멸시와 천대를 받던 노동자들이 민주노조운동으로써 노동조건 및 사회적 지위를 개선해간 것이다.<ref>교실밖의 국사여행/역사학연구소/사계절</ref>
 
' [[광주 대단지사건]]을 비롯, [[청계피복노조사건]] 등 민주노조 운동의 양상으로 나타났는데,1960년 4.19민주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이 물러나면서 민주노조운동이 시작하고 있었다. 1980년대초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강화되었던 민주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1983년 다소 완화되면서 전산업에 걸쳐 20여 개의 민주노조가 결성되었다. 1985년 6월의 [[구로공단 노동자 연대투쟁]]은 대우 어패럴노조에 대한 탄압에 대응하여 구로공단내 6개 업체가 동조농성에 들어간 사건으로 이는 노동운동이 경제적 이익을 넘어 구속자 석방·노동3권보장 등을 요구하는 정치적 성향을 나타냈다는 점과 1970년대 기업별 노조운동의 틀을 넘어 노조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한편, 이를 계기로 정치투쟁을 중요과제로 설정한 [[서울노동운동연합]](약칭 서노련)이 결성되었으나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1년만에 해체되었다.<ref name="글로벌_1" />
26번째 줄:
1986년에는 노동운동의 사상과 이론을 구체적 현실에 조응시키기 위한 사상투쟁이 전개되었는데, 이는 대중적 실천에 바탕을 두지 못했기 때문에 운동의 통일성을 저해하고 분파주의의 폐단을 초래함으로써 노동운동은 다소 정체되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에 이어 7월, 8월 2개월 동안 [[노동자 대투쟁|약 3000여건의 쟁의]]가 발생하여 그 동안 누적되었던 갖가지 노동문제가 일시에 분출되었는데, 이는 6·25가 일어난 이래 최대규모의 노동쟁의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ref name="글로벌_1"/>
 
1996년 11월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만들어졌으며, 민주노총은 [[공인노무사|노무사]]의 노동상담,[[노동법]] 교육, 노동인권 앱인 "노동자 권리찾기" 앱(플레이스토어에서 내려받기 가능) 배포 등의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