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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사업활동에 매진한다. 서선전기의 이사로 활동하였으며, 삼광상업을 창립해 삼광운수부와 함께 경영하였다. 또한 1935년에는 [[화신연쇄점]]의 이사로서 평양지부의 이사로 선출된다.<ref>{{저널 인용|제목=全鮮 店主團結한 和信連鎖店主會|저널=삼천리|성=|이름=|url=|날짜=1935년 9월 1일|권=제7권|호=제8호|출판사=}}</ref>
 
{{여러그림|그림1=김선주의 묘.jpg|alt1=基督敎人金善柱之墓|그림2=김선주의 묘 후면.jpg|alt2=(우측)西紀一九五七年七月二十七日 別世 (배면) 자녀의 이름|꼬리말=김선주의 묘비|꼬리말 정렬=center|전체 너비=280300}}
 
1937년 12월 9일, 숙환으로 사망한다. 사망하며 2만원을 기증하였는데, 이중 만 팔천원은 황주공회당의 설립을, 이천원은 황주예수교회당의 양식 개축을 위해 사용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ref name=":0" /> 아내인 김선주는 이후 1957년 부산에서 사망하였다.<ref>김선주 묘비문 ([[신불산]]추모공원 소재)</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