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거 (광천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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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애를 오로지하게 된 양성소신은 명정부인이 첩들을 잘 단속하지 못한다며 나이 많은 여종에게 복야를 맡겨 영항을 주관하게 하고 모든 집 문을 걸어잠가, 뒤에서 피리를 불되 주연에는 나오지 못하게 했다. 유거는 이를 불쌍히 여겨 노래를 불렀고, 양성소신에게 북을 치게 하고 첩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부르게 했으나, 노래가 끝나면 다시 영항으로 돌려보내 문을 봉했다. 다만 양성소신의 언니 승화부인(乘華夫人)만이 조석으로 조현했다.<ref name="h53"/>
 
유거가 열너덧살 때 역경을 가르친 스승이 자주 유거에게 간하자, 유거는 스승을 내쫓았다. [[내사 (관직)|내사]]가 스승을 불러들이자, 스승은 내사에게 자주 왕가에 금령을 내리게 했고, 유거는 사람을 시켜 스승 부자를 죽였으나 들통나지 않았다. 나중에 유거가 음악가와 배우를 불러 벌거벗고 즐기게 했는데, 광천[[제후상|상]] 강(彊)이 음악가 난(蘭)을 묶고 조사에 들어갔다. 난은 왕이 도망경과 도도에게 가무를 가르쳤다 했고, 광천상이 도망경과 도도를 부르자 유거는 둘이 간통해 자결했다고 해 벌을 면했다. 그러나 도망경을 삶았기에, 다른 시체를 가져다가 도도의 시체와 함께 어미에게 줬고, 어미는 “도도는 맞지만, 도망경은 아닙니다!”라 하며 곡하고 죽기를그 시체[死]를 구했다. 또 양성소신이양성소신은 종을 죽이려시켜 도망경 자매의 어미를 죽였다. 그 종은 체포되어 하자, 종이사건을 자복했다진술했다. 이에, [[본시 (전한)|본시]] 3년(기원전 71년), 광천상과 내사가 이 일을 아뢨고, [[전한 선제|선제]]는 [[대홍려]]·[[승상]][[장사 (관직)|장사]]·[[사공 (관직)|어사]]승·[[정위 (관직)|정위]]정을 보내 [[거록군|거록]]의 옥사를 조사하게 하고, 이들은 주청해 유거와 양성소신을 사로잡게 했다. 유사가 유거를 주살하도록 청하자, 황제는 [[열후]]와 중이천석·[[이천석]]·박사들과 일을 의논하게 하고, 그 결과 유거를 마땅히 주륙해 그 시체를 대중에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선제는 왕을 차마 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 하여, 결국은 유거를 왕 자리에서 내쫓고 처자와 함께 상용으로 옮겼다. 또 탕목읍 1백 호를 줬다. 그러나 유거는 가는 길에 [[자살]]했고, 양성소신은 [[기시 (형벌)|기시]]됐다.<ref name="h53"/>
 
광천왕을 지내던 중 [[위 (전국)|위나라]] [[위 양왕|양왕]]·[[진 (희성)|진나라]] [[진 영공 (이고)|영공]]·[[원앙 (전한)|원앙]] 등 수많은 인물의 무덤을 도굴하였다.<ref nam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