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외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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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3-6-30}}
'''핑퐁 외교'''(Ping-pong 外交, {{zh|c=乒乓外交|p=Pīngpāng wàijiāo}}, {{llang|en|Ping-pong diplomacy}})는 [[1971년]] [[4월 6일]]에 열린 제31회 [[나고야 시|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탁구 선수를 비롯한 [[미국]] 선수단 15명과 기자 4명이 같은 해 [[4월 10일]]부터 [[4월 17일]]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 [[저우언라이]] 총리와 면담을 가진 데 이어서 [[베이징시|베이징]], [[상하이시|상하이]], [[광저우시|광저우]] 등을 순방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아직 20년 이상 막혔던 교류의 징검다리를 놓은 사건을 말한다.
 
이 일을 계기로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미국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으며 [[1972년]] 2월에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미국과 중국 양국이 '[[상하이 코뮈니케]]'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끝으로 이 두 차례의 핑퐁 외교는 결국 [[1979년]]에 미국이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하는 결실을 맺는다. 1979년 3월부터 1983년 1월까지 4년간 초대 미국 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사 직책을 지낸 중공 외교관은 [[차이쩌민]](柴澤民)이다.
 
{{냉전}}
{{토막글|탁구|역사정치}}
 
[[분류:미국-중국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