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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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바 조약 ===
1660년 5월 3일, 프랑스의 중재로 맺어진 [[올리바 조약]]은 폴란드와의 오래된 적대 관계를 청산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스웨덴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과의 관계도 크게 호전되었다. 이 조약은 스웨덴의 [[리보니아]] 통치권을 인정했고,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프로이센|프러시아]]의 점유권을 가지는 것을 인정하엿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은 스웨덴 왕위에 대한 요구를 중단하였다. 이 조약의 체결은 덴마크-노르웨이도 스웨덴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1660년 5월 27일 [[코펜하겐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에는 스웨덴이 로스킬레 조약으로 얻어낸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몇몇 영토들의 소유권을 완전히 인정한다는 내용과, 그 조건으로 덴마크-
이 시기에 스웨덴은
스웨덴은 강대국으로 성공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나갔으나, 도덕적인 명예는 갈수록 실추되었다. 1655년 칼 10세가 즉위한 직후의 상황에서 스웨덴의 이웃 국가들은 충분히 동맹국의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종교와 영토 문제로 인하여 스웨덴과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칼 10세가 죽은 이후, 스웨덴은 끊임없는 침략과 협박을 받았으며, 신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인접 국가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칼 10세가 폴란드를 분할함으로써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의 호의를 사려는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고, 오히려 더더욱 강력한 적수를 만들어내는 결과로 끝났다.
1660년, 5년간의 전쟁이 끝난 이후, 스웨덴은 전쟁에서 벗어나 새롭고 광대한 새 영토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킬 기회를 얻어냈다. 하지만 칼 10세 사후 결성된 섭정위원회는 이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고, 위원회는 내분과 분열로 얼룩져 국정을 제대로 수행해나가지 못했다. 위원회는 두 파벌로 갈라졌는데, 한 파벌은 [[마그너스 데 라 가르디]]가 이끄는 호전적이고 전쟁을 중시하는 파벌이었고, 한 파벌은 [[요한 길렌스티에르나]]가 이끄는 경제와 평화를 중시하는 파벌이었다. 이 경쟁에서 호전적인 파벌이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결국 이웃
=== 스코네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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