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트 타일러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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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상자 캐롤라인 전쟁}}
'''와트 타일러의 난'''({{llang|en|Wat Tyler's Rebellion}}) 또는 '''[[농민]]의 난'''({{llang|en|Peasants' Revolt}}), '''대봉기'''({{llang|en|Great Rising}})는 [[1381년]]에 [[잉글랜드]]를 휩쓴 대규모의 민란이다. 민란의 원인은 [[1340년대]] [[흑사병]]으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정치적 긴장, [[백년전쟁]]으로 인한 높은 세금, 런던 중앙정부의 지방 통치의 불안정화 등 다양했다. 민란을[[민란]]을 직접적으로 촉발시킨 것은 [[1381년]] [[5월 30일]]에 왕실 관리인 존 뱀프턴({{llang|en|John Bampton}})이 [[에식스 주|에식스]]에서 미납된 [[인두세]]를 걷으려 한 사건이었다. 뱀프턴의 인두세 징수 시도는 폭력적 충돌로 끝났고, 이것은 잉글랜드 동남부 일대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역 장인에서부터 동네 구실아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농촌 사회 구성원들이 봉기에 동참하여 재판기록을 불사르고 감옥문을 열어젖혔다. 난민들은 세금의 삭감과 소위 [[농노제]]라 알려진 비자유 노동의 철폐, 국왕의 고위 관리들과 법관들의 제거를 요구했다.
 
[[급진적 기독교|급진적]] 성직자 [[존 볼 (사제)|존 볼]]의 설교가 난민들을 고무시켰고, [[켄트주]]에서 봉기한 농민군의 지도자인 [[와트 타일러]]가 이끄는 봉기군은 런던으로 진격했다. 농민군과 [[잉글랜드|잉글랜드 왕국]] 정부 대표들은 [[블랙히스 (런던)|블랙히스]]에서 회동하였다. 정부측은 농민군의 해산과 귀경을 종용하였으나 설득에 실패하였다. 왕국군 병력의 대부분은 해외와 [[잉글랜드]]의 북부에 주둔한 상태였고, 당시 나이 14세였던 국왕 [[리처드 2세]]는 [[런던탑]]으로 피신하였다. 6월 13일, 농민군은 런던에 입성하여 런던 읍민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감옥을 공격하고, [[사보이 궁전]]을 파괴하였으며, 템플 지구의 건물들과 법령 서적에 불을 지르고, 왕실 정부와 관련된 자는 누구든 잡아다 죽였다. 다음날, 리처드는 [[마일엔드]]에서 농민군과 만나 농노제의 폐지를 포함한 그들의 요구 대부분을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동시에 농민군은 [[런던탑]]에 진입하여 [[영국 대법관|대법관]] [[사이먼 서드버리]]와 [[영국 재무경|재무경]] [[로버트 헤일스]]를 찾아내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