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암스트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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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발 = [[1962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 그룹 2
| 임무 = [[제미니 8호]], [[아폴로 11호]]
|모교=[[퍼듀 대학교]] (Purdue항공우주공학 University)}}학사 <br>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항공우주공학 석사}}
[[파일:Neil armstrong 1999.jpg|섬네일|right|200px|[[1999년]] 연설하는 닐 암스트롱]]
'''닐 올던 암스트롱'''({{llang|en|Neil Alden Armstrong}}, [[1930년]] [[8월 5일]] ~ [[2012년]] [[8월 25일]])은 [[미국]]의 [[우주비행사]], 시험 비행사, 대학 교수, 해군 비행사로,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이다. 유언으로 자신은 달에 간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는 [[루머]]가 떠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실제 유언은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71 년1971년 NASA에서 사임 한 후 암스트롱은 1979 년까지1979년까지 신시내티 대학교 항공 우주 공학과에서 가르쳤다.가르쳤으며, 그는 Apollo아폴로 1313호 사고 조사와 Rogers Commission에서조사에서 우주 왕복선 도전자 재난을 조사했다조사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 기업의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1979 년 11979년 월부터1월부터 크라이슬러 자동차 브랜드 광고에 출연했습니다출연했다. <ref>{{웹 인용|url=https://www.express.co.uk/news/world/1140874/moon-landing-nasa-neil-armstrong-apollo-11-buzz-aldrin-spt|제목=Moon landing bombshell: Why Neil Armstrong was forced to lie over NASA Apollo 11 mission|성=Hoare|이름=Callum|날짜=2019-06-17|언어=en|확인날짜=2020-05-01}}</ref>
 
== 생애 ==
 
닐 암스트롱은 [[1930년]] [[8월 5일]] [[미국]] [[오하이오주|오하이오 주]] [[와파코네타]] 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비행기와 전투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졌었다. 이러한 목표는 청년시절에도 이어져 [[1948년]] [[퍼듀 대학교|퍼듀대학교의]] 항공기관학을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후 곧바로 해군 항공대에 지원을 위해서 해군 비행학교에 진학하였다.
 
== 우주 비행사가 되기까지 ==
1957년 10월 소련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를 발사하자 충격을 받았던 미국은 5개월 뒤인 1958년 3월 익스플로러 1호 를 발사하는 한편, 당시 미국 대통령인 [[아이젠하워]]의 우주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으로 미국항공우주국 [[NASA]]를 창설한다. 이 조직은 우주탐사만을 목적을 둔 최초의 정부기관이다. 그 이후 미국과 소련은 뒤이어 인공위성에서 이번에는 생명체를 우주로 보내는 계획을 착수했고 강아지, 원숭이, 새 등 생명체를 우주로 보낸다. 이후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계획에 착수했으며 이번에도 선수를 친건 소련이었다. 1961년 소련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지구궤도를 돌아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이에 미국은 한 달 뒤 우주비행사 [[앨런 쉐퍼드]]를 지구궤도로 보내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소련이 이듬해에 여성을 우주로 보낸다. 이처럼 두 나라는 끊임없는 우주경쟁을 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체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두나라의 남은목표는남은 목표는 인류를 달로 보내는 일이었다.
 
== 최초의 우주비행 ==
이어 3년뒤 [[아폴로 11호]]의 선장이 되어 [[1969년]] [[7월 16일]], [[버즈 올드린]]과 [[마이클 콜린스]] 비행사와 함께 [[플로리다주]]의 케네디 우주 기지를 출발하였다. 그로부터 4일 후에 달 주위를 도는 궤도 위에서 모선에 남은 [[마이클 콜린스 (우주비행사)|마이클 콜린스]]와 헤어져서, 올드린과 함께 달 착륙선으로 '고요한 바다'에 착륙하였고 여기서 암스트롱은 휴스턴의 나사본부에 교신에 성공한다. 그는 이곳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 커다란 첫 도약입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인류의 커다란 한 걸음"을 [[버즈 올드린]]과 함께 달 표면을 2시간 반 동안 탐사했고 이 시간 동안 달 표면에 모래와 암석을 모으는 한편 지진계 등을 설치해 놓은 다음 5일 뒤 무사히 지구로 돌아오게 된다.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 이후 ==
이후 닐 암스트롱의 건강이 악화되어 관상동맥 협착 증세로 인해서 심혈관계 수술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합병증이 발생하여 결국 [[2012년]] [[8월 25일]]에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닐 암스트롱의 장례식을 국장(國葬)으로 치루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닐 암스트롱의 고향인 [[오하이오주]]를 중심으로 암스트롱의 국장 거행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요청하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 결과 오하이오 주의 빌 존슨 하원의원은 AP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께 정식으로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미국에서 마지막 국장이 치러진 것은 지난 2006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이다. 전직 대통령을 제외하고 국장이 치러진 경우는 1964년 [[더글러스 맥아더]] 대장군의 장례식이 마지막이었다. 국장이 거행되려면 대통령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듯필요한데,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업적을 남겨 미국의 국위를 선양한 만큼 국장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 국장 지지자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닐 암스트롱은 죽기 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너무 국장 형식으로 호화롭게 치르지 말라고 했으며 시신을 화장한 뒤 대서양 바다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하였고, 실제로 그의 유해는 본토에서 화장된 뒤 미국 해군에 의해서 대서양에 뿌려졌다.<ref name="기사">[http://www.edaily.co.kr/news/realtime/realtime_NewsRead.asp?newsid=03184886606286704 보도 자료 리스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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