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령 사모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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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림인구수 =약 33,500명
|인구조사년도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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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령 사모아''' ({{llang|de|Deutsch-Samoa}})는 [[1900년]]부터 [[1920년|1914년]]까지 현재의 [[사모아]] 독립국에 존재했던 [[독일 제국]]의 보호령이다. [[우폴루 섬]], [[사바이 섬]], [[아폴리마 섬]], [[마노노 섬]]에 걸쳐 있었다. 독일령 사모아를 제외한 독일 제국의 [[태평양]] 식민지들은 [[독일령 뉴기니]]라는 별개의 식민지로 관리되었다. 독일령 사모아는 [[1889년]] [[12월 2일]] 워싱턴에서 맺어지고 [[1900년]] [[2월 16일]] 삼국 협약으로 얻어진 독일의 보호령으로, 이는 독일이 마지막으로 획득한 [[태평양]] 식민지이다. 독일령 사모아는 독일의 유일한 태평양 식민지로, 그외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식민지로는 독일령 자오저우 만과 [[독일령 뉴기니]]가 있었다.<ref>Ryden, George Herbert. ''The Foreign Policy of the United States in Relation to Samoa''. New York: Octagon Books, 1975. (Reprint by special arrangement with Yale University Press. Originally published at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28), p. 574; the Tripartite Convention (United States, Germany, Great Britain) was signed at Washington on 2 December 1899 with ratifications exchanged on 16 February 1900</ref> [[제1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4년]] [[8월 30일]]에는 [[뉴질랜드]] 군대가 독일령 사모아를 점령했다. [[1920년]] [[12월 17일]]을 기해 독일령 사모아는 뉴질랜드의 [[국제 연맹]]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 독일의 태평양 지역 영향력 확대 ==
독일 상인과 농장주, 영국 기업, 미국 기업의 이해 관계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면서 1차 사모아 내전이 일어났다. 전쟁은 대략 1886년에서 1894년 사이에 벌어졌으며, 주로 사모아인들 사이에서 벌어졌지만 독일군의 여러 차례 개입이 있었다. 이러한 독일의 개입은 미국과 영국의 1887년 [[아피아]] 항구에서의 대립을 이끌게 된다. 아피아 항구에서의 대립은 [[사모아 위기]]로 잇다르게 되고 이는 제2차 사모아 내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1899년 2차 사모아 내전 이후에 사모아 삼국 조약이 맺어졌고, 이 조약에 의해 [[사모아 제도]] 서경 171도 서쪽의 섬은 독일령으로, 서경 171도 동쪽은 미국령(현재 [[아메리칸사모아]])으로, 영국은 태평양과 서아프리카의 다른 영토로 보상받았다.
 
== 경제적 발전 ==
사모아의 식민 통치 기간동안 농업 생산량을 증대시키고 공적 활동을 증가시켜 세금을 거두어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 내기 위하여 새로운 회사들이 설립되게 된다. J.C 고데프로이는 "전적으로, [[독일령 사모아]]는 그전까지 누릴 수 없었던 경제적인 진보를 경험하였다."<ref>Davidson, ''Samoa mo Samoa'', p. 82</ref> 라고 말하였다.
 
J. C. 고데프로이는 [[사모아]]의 선도적인 무역 및 농장 회사로서 [[함부르크]]의 본사와 사모아 간의 통신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단으로 유지했다. 또한, 플랜테이션 농업의 발전으로 중국인 노동자 ([[쿨리 (노동자)|쿨리]])의 이주가 확대되었고 DHPG에서는 [[멜라네시아인]]을 차출하여 왔었다. 1914년까지 2,000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식민지에 이주하여 왔고, 그들은 농장에 효과적인 노동력을 제공했다.<ref>Davidson, p. 77</ref>
 
== 점령 ==
현지의 경찰력 이외에 [[독일 제국]]은 사모아에 어떤 [[주둔군]]도 배치하지 않았다. 독일은 소형 포함인 SMS 가이어와 비무장된 수송선인 플라넷만을 소위 "아우스트랄리아 기지"라고 불리는 독일령 태평양 식민지에 주둔시켰다. 그 중 가이어 포함의 선원들은은 [[사모아]]에 상륙한 적도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독일령 사모아]]는 영국의 명령으로 뉴질랜드 원정군에 의해 1914년 8월 29일 침략당했다. 독일 동아시아 비행대대의 [[막시밀리안 폰 스페]] 부제독은 독일령 사모아가 점령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장갑순양함]] [[SMS 샤른호르스트]]와 [[SMS 그나이제나우]]를 이끌고 1914년 9월 14일 [[아피아]] 앞바다에 도착했다. 제독은 약 1600명의 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한 뉴질랜드 지원군이 [[우폴루 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식민지를 손쉽게 탈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독은 상륙이 연합군이 지배하는 바다에서 일시적으로 유리할 뿐이라고 생각하여 [[순양함]]들을 [[타히티]] [[파페에테]]로 출발시켰다. [[뉴질랜드]]는 1920년까지 [[독일령 사모아]]를 점령한 후 1962년 독립 때까지 C급 위임통치<ref>국제연합에 의한 비준일은 1920년 1월 10일이다; C급 위임통치는 자치권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모집단을 위해 설정되었다.</ref> 형식으로 통치하였고 1946년 이후 [[유엔]] [[신탁통치령|신탁통치]] 영토로 통치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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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아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