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온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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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정치===
왕온서는 도적을 잡는 일을 하면서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는 일이 매우 많았고, 승진을 거듭하여 [[광평군 (행정 구역)|광평]][[도위]](廣平都尉)가 되었다. 군에서 호방하고 용감하여 일을 맡길 만한 관리 십여 명을 뽑아 자신의 심복으로 삼고, 그들이 몰래 저지른 중죄를 알아본 후 그들로 하여금 도적을 살피게 하였다. 잡고 싶었던 도둑을 잡아들여 자신을 만족시키면 백 가지 죄를 범하더라도 벌하지 않았고, 도적을 피하면 그가 과거에 저지른 일을 들어 일족까지 모두 죽였다. 때문에 [[제 (전한)|제나라]]와 [[조 (전한)|조나라]]의 도적들은 감히 광평에 가지 못하였고, 또 광평에서는 길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줍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식을 들은 [[전한 무제|무제]]는 왕온서를 [[하내태수]]로 전임시켰고, 왕온서는 9월에 하내에 도착하였다.
 
광평에 있을 때부터 하내의 호족 가운데 간악한 집안을 모두 알고 있었던 왕온서는, 개인이 소유한 말 쉰 필을 갖추어 하내에서 [[장안]]에 이르는 각 역참에 배치하고, 관리는 광평에 있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두었다. 또한 군의 교활한 호족을 잡아들였는데, 이들과 연좌되어 잡힌 호족만 천여 가구나 되었다. 왕온서는 무제에게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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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전한)|원정]] 6년(기원전 111년), 왕온서는 동월(東越) 정벌에 종군하였다. 귀환한 후 제시한 의견 중 무제의 뜻에 맞지 않은 것이 있었고, 결국 사소한 법에 걸려 면직되었다.
 
이 무렵 무제는 통천대(通天臺)를 만들려 하였으나 그 공사를 맡을 만한 인력을 구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왕온서가 중위의 관할 안에 있는 자로 병역을 마치지 않고 달아나거나 숨은 자 수만 명을 찾아내어 통천대를 쌓도록 주청하니, 무제는 기뻐하여 그를 [[소부 (관직)|소부]]에 임명하였다가 다시 우내사로 옮겼다. 왕온서의 통치 방식은 예전과 같았고, 간사한 일을 막지 않았다. 그러나 훗날 법에 걸려 관직을 잃었고, 다시 우보도위[[우부풍|우보]]도위(右輔都尉)가 되어 중위의 직무를 맡았으나 통치 방법은 예전과 같았다.
 
===몰락===
그로부터 일 년 남짓 지난 [[태초 (전한)|태초]] 원년(기원전 104년), 한나라는 [[대완국|대완]]을 정벌하려 하였다. 이때 군사를 일으키면서 조서를 내려 호방하고 힘 있는 관리를 징집하였는데, 왕온서는 부하 화성(華成)을 숨겨 주었다.
 
이윽고 어떤 사람이 왕온서가 기병으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또 간사하고 탐욕스러운 일을 하였다고 고발하였다. 그 죄는 멸족에 이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왕온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온서의 두 아우와 그들의 두 사돈 집안도 다른 죄를 지어 멸족되었다. 이를 보고 [[광록훈]] [[서자위]]는 이렇게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