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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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_그림=Flag_of_Cambodia_(pre-1863).svg
|지도_그림=Khmer_Empire1.png
|수도= [[아쇼다라푸라]](초기) <br> [[앙코르 톰]](후기)
|공용어=[[크메르어]] <br> [[산스크리트어]]
|종교= [[힌두교]], [[대승 불교]](802년 ~ 1295년) <br> [[상좌부 불교]](1295년 ~ 14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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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제국은 광대한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인 교류를 하였고, 자바나 [[말레이 반도]]의 [[스리비자야 제국]]과 스리비자야 제국과 동맹인 [[사일렌드라]]와도 교류를 하였다.
 
{{토막글|== 역사}} ==
[[802년]]에 [[자야바르만 2세]]가 [[진랍]]을 다시 통일한 후 [[데바라자]]로 즉위하면서 캄부자데샤 왕국이 시작되었다. 이후 캄부자데샤의 왕들은 앙코르에 최초의 수도인 야쇼다라프라를 축조하였고 인근지역을 정복하고 이어서 수도와 대사원을 건립하였다. [[수르야바르만 2세]]는 [[앙코르 와트]]를 건설하였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거의 전역을 정복한 [[자야바르만 7세]]는 곧 남쪽에 [[앙코르 톰]]을 세워서 진랍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이후 진랍이 급속히 쇠퇴하여 [[1296년]]에 진랍을 방문한 [[원나라]]의 [[주달관]]은 그곳을 둘러보고 견문록인 《[[진랍풍토기]]》를 남겼다. 14세기 후반부터 [[타이]] [[아유타야 왕조]]가 진랍으로 처들어와, [[1432년]]에 [[앙코르 왕조]]가 멸망하고, 푼니아 야트왕은 남쪽 지역으로 천도하였다. 그 이후 진랍이란 명칭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16세기 후반부터는 캄보디아란 이름이 등장하였다.
 
== 진랍풍토기 ==
{{본문|진랍풍토기}}
진랍풍토기는 중국 [[원나라]] 시대에 저술된 진랍(크메르 왕조)의 여행 견문록으로, 당시의 풍습, 사회, 문화, 산물 등을 적은 책이다.
 
[[주달관]]은 [[저장성]] 온주 출신으로, 항해의 경험이 많고, 학식이 깊은 인물이었다. 주달관은 원나라 [[원 성종|성종]]의 명에 의해 사신으로 선택되어 [[1296년]] 진랍을 출발하여, [[1297년]] 귀국했다. 진랍풍토기는 귀국 직후에 쓴 개인적인 견문록이지만, 약 1년간 머물면서 관찰한 상세한 조사보고서이며,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중세 캄보디아의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진랍풍토기에는 진랍의 명칭에 관한 내용과 온주로부터의 출발하여 수륙의 여정을 상세히 적은 기록과 성곽([[앙코르톰]]), 복식, 관속, 종교, 임산부, 질병, 사망, 농경, 무역, 수레, 속군, 촌락, 목욕 그리고 왕의 출입까지 42개의 항목에 걸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 같이 보기 ==
* [[진랍풍토기]] | ([[주달관]])
 
 
[[분류:캄보디아의 옛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