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종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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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년]] 광평시랑 [[한현규 (고려)|한현규]]와 예빈경 [[김염 (고려)|김염]]을 진(晋)나라에 보내어 왕위를 계승한 것을 알리고 [[거란족]]을 쳐부순 것을 하례하였다.
 
이복 동생 [[고려 정종 (3대)|왕요]]와 [[왕소]]가 왕위에 도전하고 있음을 눈치챈 [[왕규 (함규)|왕규]]는 945년(혜종 2) 이 사실을 알렸으나 혜종은 둘의 반발이 두려워 벌하지 않았다. <nowiki>[[고려 정종 (3대)|왕요]]</nowiki>는 나중에 왕규가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다고 누명을 씌웠다.
[[945년]] 후진에서 광록경 범광정과 태자선마 장계응을 파견, 그에게 지절 현도주도독 상주국충 태의군사 고려국왕(持節玄度主都督上柱國充太義軍使高麗國王)으로 책봉하는 교서를 내렸다. 그러나 그해 혜종을 지지하던 [[고려 태조|태조]]의 최측근 [[박술희]]가 왕요 일파에 의해 역모의 누명을 쓰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