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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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박트리아 마르기아나 문화는 1970년대 후반 사리아니디가 당시 [[소비에트 연방|소련]]에서 주관한 발굴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델바르진(Delbarjin), 다실리 오아시스(Dashly Oasis), 토홀로크 21(Toholok 21), 고누르(Gonur), 켈렐리(Kelleli), 사펠리(Sapelli), 자르쿠탄(Djarkutan) 등 많은 발굴지에서 대형 건축물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성벽과 성문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박트리아 마르기아나에 대한 보고는 거의 대부분 소련 학술지에 국한되어 소련 말기까지 서방에서는 거의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 [[고고학]])결과에 따라 박트리아 마르기아나 문화는 기원전 약 3 천 년기의 마지막 세기(21세기)에서부터 2 천 년기의 초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박트리아 마르기아나의 기원에는 학계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다. 또 그 쇠퇴 원인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 박트리아 마르기아나의 독특한 유적과 유물은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몇세기몇 세기 후 자취를 감춘다.
 
박트리아 마르기아나 문화의 지리적 범위는 꽤 넓어서 [[이란]] 남동부, [[발루치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그 유적이 발견된다. 고고학 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발루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이 이 문화의 심장부일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Lamberg-Karlovsky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