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행: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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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행'''({{langllang|ja|五奉行|고부교우}})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도요토미 정권]] 말기에 주로 정권의 실무를 담당한 [[봉행]] 5인을 칭하는 말이다. 당시에는 오봉행이라는 호칭은 존재하지 않았고, '''도시요리'''(年寄) 등으로 불렸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각 부의 장관에 해당되며 실제로도 담당 분야가 거의 비슷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관백]](関白) 취임 뒤 [[1585년]], 또는 [[1593년]] 히데요시의 와병 중에 [[오대로]](五大老) 제도와 함께 설치된 것으로 생각된다. 도요토미 정권에서는 [[오타니 요시쓰구]](大谷吉継)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시작으로 많은 봉행이 행정을 담당하고 있어, 그 중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활약을 한 5명이 오봉행이라고 불렸다. 5명이라는 수는 정해진 것은 아니고, [[도요토미 히데쓰구#히데쓰구 사건|히데쓰구 사건]](秀次事件)의 영향으로 [[아사노 나가마사]](浅野長政)가 일시 실각했던 때에는 나가마사를 대신하여 [[미야베 게이준]](宮部継潤), [[도미타 잇파쿠]](富田一白)를 더하여 6명이 봉행직을 맡았다고도 한다.
 
1600년에 오봉행 중 한 명인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오대로 중 한 명인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를 총대장으로 옹립한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 때에는, 서군에는 미쓰나리 외에 [[나쓰카 마사이에]]도 종군했으며, [[아사노 나가마사는나가마사]]는 동군의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군세에 속해 있었다. [[마에다 겐이]]와 [[마시타 나가모리]]는 [[오사카 성]]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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