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화급: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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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화급'''(宇文化及, [[583년]]경 ~ [[619년]])은 중국 [[수나라]]의 관리로, 고구려 원정군 사령관인 좌위솔 [[우문술]]의 장남이다. [[우문지급]](宇文智及), [[우문혜급]](宇文惠及)의 형이며 [[우문사급]](宇文士及)의 이복형이다. [[양광|수 양제 양광]]의 총애를 받아, 양광의 근위장이 되었고, 얼마 안 되어 대복소경에 봉해졌다.
 
수나라 말기인 [[618년]], 좌둔위장군에 봉해진 우문화급은 엄청난각지에서 대반란으로일어나는 반란으로 이상천하가 선택이 없다는혼란한 것을 알고 둘째 동생 우문지급과 함께 양광을[[수 양제]]를 내실로 끌고 들어가 그를 목졸라 시해하였다. 그리고,양제를 양광의시해한 조카인 [[양호]]마저 죽인 뒤,양광의 황제를조카 참칭,양호를 국호를황제로 '허'(許)라추대하고 하고,섭정으로써 연호를모든 천수(天壽)라권력을 하였다차지했다.
 
이후 황제 양호와 대신들, 자신의 측근 및 병사는 물론 수 양제의 보물들까지 이끌고 수나라의 옛 수도인 낙양으로 향했다. 이 때 낙양에서는 [[왕세충]]을 비롯한 여러 관리들이 [[양통]]을 황제로 옹립한 상태였다. 낙양의 관리들은 다른 반란세력 [[이밀]]에게 위공(魏公)의 자리를 주고 우문화급을 막게 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619년]]에 [[당나라]]를 세운 [[이연]]의 사촌 동생 [[이신통]]이 공격해오자 패하였고, 이후 다른 반란세력인 [[두건덕]]에 의해 자신의 두 아들, [[우문승기]], [[우문승지]]와 함께 양국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참형당했다.
 
우문화급은 이밀과 몇 차례 싸웠지만 우세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우문화급 진영의 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밀은 우문화급에게 화친을 제의하는 척 하면서 우문화급 진영의 군량이 완전히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우문화급은 이밀의 이러한 전략을 알아챈 뒤 이밀의 진영을 기습했고 거의 이밀을 죽일 뻔 했으나 이밀의 부하 장수 [[진숙보]]의 보호로 이밀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밀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식량도 얻지 못한 채 북상한 우문화급은 자신이 세운 황제인 양호마저 죽인 뒤, 황제를 참칭, 국호를 '허'(許)라 하고, 연호를 천수(天壽)라 하였다.
 
이듬해인 [[619년]] 봄, [[당나라]]를 세운 [[이연]]의 사촌 동생 [[이신통]]이 우문화급을 공격했다. 우문화급은 이신통에 패해 [[랴오청|료성]]으로 도망쳐 항전했다. 료성의 물자는 다 떨어져갔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우문화급은 이신통에 항복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신통은 우문화급이 갖고 있는 양제의 보물들과 공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이 때 다른 반란세력인 하공(夏公) [[두건덕]]이 군대를 이끌고 와 성 밖의 이신통 군대를 쫓아내고 성을 함락시켰다. 성을 함락시킨 두건덕은 우문화급과 그의 아들 우문승기, 우문승지를 자신의 근거지인 양국(襄國)으로 데려가 참수시켰다.
 
우문화급의 동생인 우문사급은 이 때 목숨을 건져 당나라에 귀순한 뒤 당나라의 명신이 되었다.
 
[[분류:583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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