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코끼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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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 문단|날짜=2017-01-26}}
[[파일:The phalanx attacking the centre in the battle of the Hydaspes by Andre Castaigne (1898-1899).jpg|right|섬네일|200px|[[히다스페스 전투]]의 전투 코끼리를 묘사한 모습.]]
전투 코끼리는 인도에서[[인도 아대륙]]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서방으로 전파되면서 서방의 역사에서도 전투 코끼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아케메네스 왕조]]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군을 상대하기 위해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15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투입하였다. 비록 이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은 패배하였으나 알렉산드로스는 코끼리에 겁을 먹은 나머지 전투 전날 밤 두려움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러야 했으며,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도 이에 깊은 인상을 받아 전투에서 사로잡은 15마리의 코끼리를 페르시아의 잔존 영토를 정복하는데 투입하였다. 또 인도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군은 펀자브 지역의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포러스 왕]]이 투입한 85~100마리 가량의 전투 코끼리 부대를 상대하게 되었다. 비록 해당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은 완승을 거두었으나, 이후에 퍼진 인더스 강 너머의 인도 국가들이 수천 마리의 전투 코끼리 부대를 운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케도니아군은 겁에 질렸고, 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더스 강을 넘어 정복 전쟁을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후의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에페이로스]]의 [[피로스]] 왕이 로마와의 전투에서 동원한 전투 코끼리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동원한 전투 코끼리의 사례가 있다. [[이집트]]와 카르타고, [[누미디아]]와 [[쿠쉬 왕조]] 등은 북아프리카 코끼리를 사용하였는데, 이들은 서기 2세기 경 멸종된 별도의 아종으로 덩치가 [[셀레우코스 제국|셀레우코스 왕조]]의 코끼리보다 작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더욱 남쪽에서는 아프리카의 일부 부족들이 [[아프리카 코끼리]]를 길들여 전투용으로 사용하려 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인도 코끼리나 북아프리카 코끼리에 비해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이유로 전투에서는 월등한 효과를 발휘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특유의 호전성과 조련 수단의 부족으로 난조를 겪었을 것으로 예상되며, 따라서 해당 코끼리들은 전장에서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