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보쿠초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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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년]]에는 다카우지가 다다요시파에 대항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남조에 항복한다. 이에 의해 다카우지는 [[정이대장군]]에서 해임되었다. 남조는 이를 기회로 삼아 교토로 진격해 교토에 있던 [[아시카가 요시아키라]]를 몰아내고 신기를 회수한다. 요시아키라는 북조 [[연호]]를 부활시켜, 다시 교토를 탈환하지만 남조는 물러날 때에 고곤, 고묘 상황과 천황에서 퇴위한 [[스코 천황]]을 아노로 끌고갔다. 이 때문에 북조는 고곤의 아들이며 스코의 동생인 [[고코곤 천황]]을 신기 없이 즉위시키고, 아울러 공무의 관직을 전상태로 되돌렸으며 다카우지도 정이대장군직에 복귀하였다.
 
남조의 [[기타바타케 지카후사]]는 [[간토 지방]]에서의 남조세력의 결집을 꾀하고자, [[히타치노쿠니|히타치 국]] [[오다 성]]에서 남조의 정통성을 나타내는《[[신황정통기]]》를 집필한다. [[1339년]]에 고다이고 천황이 죽자 지카후사가 남조의 지도적 인물이 되었지만, 지카후사도 [[1354년]]에 죽자 남조는 다시 쇠퇴하였고, 막부내에서의 항쟁으로 실각되었던 [[호소카와 기요우지]]가 남조에 귀순하여 [[구스노키 마사노리]]와 함께 일시적으로 교토를 점거하였지만, [[1367년]]에 패하여, 이후로 대규모의 남조의 공세도 없어져 아시카가 요시아키라 대에는 [[오우치 히로요]]와 [[야마나 토키우지도키우지]]등도 북조에 귀순한다. 요시아키라의 사후의 아시카가 막부는 어린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를 보좌한 관령(管領) [[호소카와 요리유키]]의 지도에 의해, 남조측의 중심적 무장이었던 구스노키 마사노리를 귀순시키는 등 활약하여 막부체제를 확립시킨다.
 
=== 큐슈의 정세와 남북조통합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