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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급제한 후 장연현감을 거쳐, [[1571년]](선조 5년)에는 옹진현령이 되었고, [[1576년]](선조 10년)에는 재령군수에 임명되었다. [[1577년]](선조 11년)에 종계변무를위한 주청사(奏請使)의 질정관(質正官)자격으로 [[명나라|명]]나라에 다녀왔다. 명에 다녀온 뒤 다시 재령군수에 임직하였다. 이때 해주에 은거 중이던 [[이이]](李珥)와 교유했다.
 
[[1581년]](선조 14년)에 황해도 재령군수에 제임중, 기근으로 괴로워하던 백성을 구제하는데 힘써 선조에게서 표리(임금이 신하에게 내린 옷의 겉감과 안찝)를 하사받았다. 같은 해에 다시 주청사 김계희의[[김계희]]의 질정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84년]](선조 17년)에는 첨지에 제임하였다. 그러나 같은해 초 그가 존경했던 동료이자 절친한 벗이기도 하였던 이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586년]](선조 19년)에는 [[호군]]으로 전임하여 있다가 관리들의 시문과 학식을 시험했던 [[조선의 과거 제도|이문정시]]에 장원을 하여 첨지중추부사(정3품 당상)에 오르고 가선대부(종2품)에 가자되는 영광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