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항일연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8번째 줄: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은 1936년 중국공산당 지도 아래 만주에서 만들어진 항일투쟁을 주도한 군사조직으로, 중국인과 조선인 등의 민족통일전선 성격을 띠었다.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인과 중국인의 유격부대를 공산당의 주도로 통합한 군사조직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요 인사였던 [[김일성]], [[김책]], [[최현 (1907년)|최현]], [[최용건]] 등도 이 항일연군에 참여했다. 당시 [[만주]]에 있던 수많은 항일계열 군사조직 중에 제일 큰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한국 독립운동사에서도 그 비중이 상당하다.
 
[[1939년]] 일본 [[관동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의해 [[1942년]] 소멸되고, 잔존 세력은 소련으로 도피하였다. 소련으로 도피했던 조선인들은 국내에 아무 정치적 기반이 없었지만 1945년 8월 북한한반도 이북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의 일방적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였다.
 
== 창설 ==
27번째 줄:
 
== 활동 ==
제1로군이 활동하고 있던 남만주는 조선과의 국경지대였고 전투가 잦았기 때문에, 제1로군의 활동은 조선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보천보 전투]] 이전부터 제1군의 김일성이나 [[최현]]( 제1로군 제 4사의 단장으로, 후의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 무력 부장인민무력부장)의 이름은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등을 통해 조선에 알려져 있었다. 일본은 김일성이나 최현에 현상금을 걸었다. 이들 신문에서는 그들을 도적떼로 비난해, 피해를 받은 주민에게 동정하는 논조가 지배적이었다. 이 시기의 조선에서는 언론은 일본 정부에 의하여 검열을 받았으므로 항일운동을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 후도 [[만주국]]이나 일본군 관동군을 상대로 게릴라 활동을 실시했기 때문에, 일본은 이를 식민지 지배·만주국 통치를 가로막는 장해물로 간주하여 철저한 탄압을 하였다. 일본은 만주국의 경찰·군대나 [[관동군]] 등을 동원해 게릴라의 거점이나 협력하는 촌락 등을 섬멸하고, 이것과 병행하여 집단 부락을 건설하여 그들의 활동을 고립시키고, 귀순 공작 등의 수법을 이용해 동북항일연군을 탄압했다. 특히 집단 부락의 건설로 동북항일연군은 물자의 공급이 곤란해져 두메 산골에서의 게릴라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41번째 줄:
소련에 망명한 구성원은, [[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여단|제88 특별 여단(교도 여단)]]에 편입되었다. 여단장은 [[주보중]]으로 러시아인도 참가하고 있는 것 이외는 그 성원이나 직책 등, 대체로 동북항일연군의 조직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련 망명 후에도 그들은 수시로 만주영토와 북부조선에 잠입하여 정찰 및 기습, 민중조직화 등 작전을 수행하였다.
 
1945년에 일본의 패전으로 조선이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되자 그들은 조선에 귀환하여 북한의이북 지역의 당이나 군의 요직을 차지하였다. 그 후 [[남로당]], [[연안파]], [[갑산파]](보천보의 싸움 등에서 동북항일연군과 함께 싸우다가 조선으로 잠복한 사람), [[소련파]](동북항일연군과는 별도로 소련으로부터 파견된 사람)를 숙청하여 북조선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 참고 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