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시프 스탈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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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활동과 혁명에 투신 ====
[[파일:Shtal20.JPG|섬네일|왼쪽|150px|20대 초반의 스탈린]]
[[1899년]] 12월 스탈린은 트빌리시 천문대에 채용되어 천문대 서기로 수개월간 근무했다.<ref name="daum1"/> 트빌리시 천문대의 공무원은 그가 [[정치]] 이외의 분야에서 월급을 받고 일한 유일한 직업이라 한다. 그가 육체 노동은 전혀 한 적이 없다<ref name="daum1"/> 는 주장도 있다. [[조지아 (국가)|조지아]]의 유대인 재벌인 [[로스차일드]] 일가가 소유한 정유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1900년]](21세) 지하 정치운동에 가담하고, 지하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00년]]부터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며 그는 캅카스 지방의 주요 공단 지대에서 노동자의 시위와 파업을 선동했지만선동했으며, 스탈린은 탁월한 언변으로 [[노동자]]들을 시위에 앞세웠다. 하지만 스탈린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노동자]]들을 시위에 앞세워 경찰과 유혈 충돌을 벌이게 하는 데 지나치게 열성을 보이면서 동료 [[공산주의]] 혁명가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다.<ref name="daum1"/> 그는 인간을 도구로 이용하려 든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제국 정부의 탄압으로 이러한 비난은 조직 내부의 단결을 저해한다는 논리로 대응한다.
 
[[파일:Ekaterina Svanidze.jpg|섬네일|오른쪽|180px|첫 부인 [[에카테리네 스바니제]]<br />(그녀가 당국의 극심한 탄압과 가난 속에 최후를 맞이하면서 스탈린은 한층 냉혹하게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