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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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철'''(蒯徹, ? ~ ?)은 [[진나라]] 말기, [[전한|한나라]] 초기초기의 모략가.유세객으로, 한나라무신, 대원수 [[한신, (회음후)|한신]](韓信)의조참을 세객이다섬겼으며 한신에게 자립을 권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름이 [[전한 무제|무제]](武帝)의 휘와 같다하여같다 하여 사마천이 [[사기 (역사서)|사기]]에서 이름을 바꿔 쓴 뒤로는 '''괴통'''(蒯通)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범양 사람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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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이 이량에게 죽을 무렵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고, [[기원전 204년]], [[한신]]이 위나라, 조나라, 대나라를 차례로 격파하고 제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에 비로소 다시 나타났다. [[전한 고조|한왕 유방]]은 한신에게 제나라 공격을 맡겼지만 이를 잠시 중지시키고 [[역이기]]를 보내 제나라 왕 전광을 설득시켜 자신의 편으로 이미 포섭했다. 괴철은 이대로라면 역이기가 한신보다 큰 공을 세우게 된 것이라며 한신을 꼬드겨 제나라를 공격하게 했고, 한신은 이미 한나라와 손잡기로 해 대비가 없던 제나라 군대를 손쉽게 무찌르고 제나라를 장악했다. 한신에게 제나라를 가져다 준 괴철은 천하 3분론을 주장하며 한신에 독립할 것을 권하지만, 한신은 한왕과의 정리를 내세워 거부했다. 괴철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미친 체 하여 한신을 떠났다.
 
한신이 [[진희]]와 연계하여 모반하려다 [[고황후]] 여씨와 [[소하]]에게 걸려들어 죽으면서 “괴철의 계책을 쓰지 않아, 여자의 손에 죽게 되니 후회스럽다!”라고 하자 고제는 괴통을 소환했으나, 괴통은 자기 주군을 위해서 말했을 뿐이라고 말하여 목숨을 건졌다. 이후, [[조참]]이 [[유비 (제도혜왕)|제도혜왕]]의 재상이 되면서 그 빈객으로 들어갔다. 억지로 [[전영]]을 섬겼다가 전영이 패망한 이후 은거하고 있던 제나라의 처사 동곽선생과 양석군을 조참에게 추천하여 빈객으로 삼게 했다.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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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월]]
 
== 출전 ==
{{초한전 중요 인물}}
반고: 《한서》 권45 괴오강식부전제15 중 괴철{{초한전 중요 인물}}
 
[[분류:한나라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