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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경제·문화 ==
전기가야연맹과는 달리 반파국 중심의 대가야국은 반파국을 상가라도라 칭할 만큼 어느정도 중앙집권화에 성공해 고대국가 성립 직전까지는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상업이 중심이었던 구야국과는 달리 내륙산간 일대의 농업이 반파국의 경제의 기반이었지만 섬진강 유역을 장악한 이후 대외교역에도 적극성을 보여서 섭라지방(전라도 동부의 가야지역)의 옥(玉)을 고구려에 수출했다.<ref>[[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명왕]] 13년조</ref> [[가실왕]]때 [[가야금]]을 제작하고 이를 토대로 [[우륵]]이 12곡을 만들어 음악을 정리하는등 문화 수준도 높았다.
 
== 고령 지산동 고분군 무덤서 대가야 토제방울 출토 ==
기사입력 2019-03-20 (최욱 기자)
 
 
<앵커멘트>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의 아이 무덤에서 가야 건국설화 그림이 새겨진 토제방울이 발견돼 학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고대 건국설화를 시각화한 유물이 발견된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문화재 조사단은 알에서 시조가 탄생했다는 난생 설화가 김해시 구지봉의 금관가야뿐만 아니라 대가야에도 존재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신성철기잡니다.
 
<기사본문>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입니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대동문화재연구원은 최근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던 중 5세기 후반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소형 석곽묘에서 
 
지름이 약 5㎝인 흙으로 만든 토제방울 1점을 비롯해 소형 토기 6점, 쇠낫 1점, 화살촉 3점, 곡옥 1점, 두개골 조각과 치아가 발견됐습니다.
 
토제방울에는 그림 6개가 새겨져 있는데
 
남성 성기를 표현한 듯한 그림과 거북 등껍데기, 관을 쓴 남자, 하늘에서 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자루,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춤을 추는 여자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조사단은 토제방울 그림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수로왕 건국설화와 일치한다며 이는 구지봉에서 가야 시조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경남 김해를 중심지로 삼은 금관가야뿐만 아니라 대가야에서도 전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홍대우 대동문화재연구원
 
"남성 성기는 가야 건국설화 속 여신 정견모주가 노닐던 고령 인근 가야산 상아덤을 표시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구지가 연구자 중에는 거북 머리를 수로, 우두머리, 남근, 구지봉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조사단은 방울을 만든 대가야 장인은 그가 살던 대가야 시조 탄생설화를 보여주고자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무덤은 길이 165㎝·너비 45㎝·깊이 55㎝이며, 판석으로 벽을 만들고 이중으로 덮개돌을 올렸습니다.
 
무덤안에 있던 치아를 분석한 결과, 무덤 주인은 4∼5세인 어린아이로 추정되는데, 일반적인 토기가 나왔다는 점에서 아이의 신분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문화재청은 현재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신청중인 가운데 이번 지산동 고분군의 유물발견으로 인해 
 
가야 고분군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정재숙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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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도 대가야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고령군은 세계적인 역사유적지로 널릴 알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곽용환 고령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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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가운데 이번에 발굴된 토제방울 그림에 대한 명확한 실체를 밝히기 위해 학계에서 추가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hcn news 신성철입니다.
 
== 역대 국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