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저 문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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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저의 문제'''(建儲議問題)는 [[1591년]](선조 24년)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일어난 분쟁이며, '''건저의 사건'''이라고도 부르며, '''건저 문제''', '''건저 사건'''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 경과 ==
[[정여립 사건]]에 치죄(治罪)가 가혹하여 동인의 원한을 사고 있던 서인의 영수 [[정철]]이 소위 건저의 문제로 실각함에 따라 서인의 세력은 다시 꺾였다.
 
즉 선조의 총애를 받던 인빈(仁嬪) 김씨가 신성군(信城君)을 낳고,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인빈의 오빠 [[김공량]](金公諒)과 연결하고 있었다. 이에 좌의정 정철이 세자를 정할 것을 주장하여 왕의 미움을 사고 강계(江界)로 유배되었으며, 이에 관련되어 [[윤두수]] 등 서인이 파직 혹은 원류(遠流)됨에 따라 동인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게 되었다.

== 결과 ==
동인은 이 사건을 전후하여 서인에 대한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려 [[남인]]과 [[북인]]의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 함께 보기 ==